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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터어키

우연한 터키 여행 1. - 이라크를 향해서

by 장돌뱅이. 2005. 2. 25.

*위 사진 : 프랑스 파리공항.

아침 일찍 공항에 나와 이라크로 동행할 일행을 기다리다 호기심에 공항 내의 보험회사에 이라크도 여행자보험이 가능하냐고 물어보았다. 대답은 보험을 들 수는 있으나 전쟁이나 소요 사태로 인한 피해는 보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라크는 그런 나라가 되어 있었다. 보험대상에서도 실질적으로 제외가 된 나라.
사고 발생의 개연성은 어느 곳보다 높고, 동일한 우발적 사고 발생의 위험에 처한 사람은 한정되어 있어서 합리적인 보험료의 책정이 불가능한 이라크 전쟁 상황은 보험 비즈니스의 대상으로서는 매력이 없을 것이다.

 소용이 없는 말인 줄 알면서도 실없이 보험사 창구 아가씨에게 우문을 던져보았다.
"그러나 실제로 보험은 그런 곳에 필요한 제도가 아닙니까?"
자본주의에선 전쟁도 비즈니스라고 하니 보험회사의 이기심에 섭섭해할 건 없겠다.

전쟁.
클라우제비츠는 그의 전쟁론이란 책에서 전쟁을 “다른 수단을 가지고 하는 정치의 계속”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그 다른 수단이란 “폭력의 극한적 행사”를 말하는 것이다.
보통의 우리에게 전쟁은 그런 능동의 개념이 아니라 수동의 의미로 각인된다.

한국전쟁 때 대동강 철교를 넘어오던 피난민 행렬,
네이팜탄을 피해 벌거벗은 몸으로 울부짖으며 도로를 달려 나오던 베트남 소녀,
사지가 절단된 이라크 아이, 부서진 건물과 도로,
소름 끼치는 붉은 핏자국과 흩어진 주검,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을 도려내는 울부짖음······

그 속으로 출장이라니!

“돈이 많은 나라
자국민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아낌없이 사랑과 포탄을 쓰는 나라

우리들은 오늘 그 나라 대통령이 원하는
이라크˚ 전쟁에 우리들의 꿈을 팔 것인가 생각하고
아침 저녁 TV는 우리들의 희망 위에

또 한 겹 두터운 포장지를 씌우겠지만”

- 곽재구의 시중에서 - 
(*이라크˚ : 원 시에는 레바논 임)

12시 40분. 에어프랑스로 인천을 출발했다.
북경과 울란바토르 상공을 지나 우랄산맥을 넘는 열두 시간의 비행 끝에 파리에 도착했다.
현지 시간 5시 20분의 저녁 무렵이었다.
다시 터키의 이스탄불행 비행기로 갈아탔다.
밤하늘을 가르며 다시 서너 시간의 비행이 이어졌다.
급하게 만들어진 출장이 지루한 우회의 경로를 만든 것이다.

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낯선 곳의 먼 불빛.
꿈처럼 반짝이는 것들과 만나게 될 우연과 약속··· 우연한 이유로 우연한 사람들과 함께 살벌한 전쟁터로 출장을 가면서도 기분은 잠시 여행자의 그것이 되기도 했다.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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