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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봉화산, 내 놀던 옛 동산

by 장돌뱅이. 2024. 3. 21.

♪우뚝 솟은 봉화산 봉 늠름한 기상과···
초등학교 때 교가다. 봉화산은 학교 뒤쪽으로 가까이 있어 친근한 산이었다.
50여 년만에 봉화산에 올랐다.

옛 추억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아내와 함께 걸을 편한 산길을 찾다 보니 가게 되었다.
아내는 재작년 산행을 하다 허리를 다친 이후 산엘 올라본 적이 없다. 이제 거의 회복이 되어 다시 등산을 하고 싶어져서라기보다는 매일 하는 산책을  가끔씩은 집 근처가 아닌  다른 곳에서 하고 싶기 때문이다.

봉화산의 "동행길"은 지하철에서 접근성도 나쁘지 않은 데다가 산 아래서부터 꼭대기까지 걷기에 편한 데크길로만 올라갈 수 있어 아내에게 최적의 산책길이자 등산로일 것 같았다.
아내가 연 이틀 모임에 나가고 나 혼자 사전 답사를 위해 길을 나섰다.

올라갈 때는 계단으로 이어진 일반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고 내려올 때는 데크길을 따라 내려왔다.
지하철에서 나와 20여분 쯤 걸으니 꼭대기에 닿았고 내려올 땐 데크길로 빠르게 내려오니 비슷한 시간이 걸렸다. 오르내리는데  넉넉잡아 한 시간 걸렸으니 아내와 올 때는 대략 두 시간 잡으면 될 것 같았다. 나무마다 연둣빛 새싹을 다고 있을 때쯤 아내와 다시 오리라 마음먹었다. 

1994년에 복원된 봉수대
꼭대기에서 본 남쪽 풍경. 왼쪽으로 아차산과 용마산이 보인다.
북쪽 풍경. 북한산 능선이 길게 달리고 있다.

봉화산은 높이 160미터의 낮은 산이다. 어릴 적에는 교가처럼 제법 '우뚝 늠름'한 산이었지만 50여 년만에 어른이 되어  오르니 산이라기보다는 아담한 공원 같은 느낌이었다. 정상에는 어릴 적에는 없던 봉수대가 복원되어 있어 생경했고 체육시설과 매점까지 있어 낯설었지만 시원스럽게 터진 시야는 이곳이 왜 봉화를 올리던 곳이 되었는지 알려주었다.     

아차산에서 본 봉화산.

몇 해전 건너편 아차산을 걷다가 봉화산을 바라본 적이 있다. 어릴 적 주변을 감싸던 배밭과 논들이 사라지고 빽빽한 고층건물 사이에 봉화산은  마치 콘크리트 파도 위에 뜬 작은 섬처럼 위태롭게 보였다.

고향집 앞 느티나무가
터무니없이 작아 보이기 시작한 때가 있다.
그때까지는 보이거나 들리던 것들이
문득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나는 잠시 의아해하기는 했으나
내가 다 커서거니 여기면서,
이게 다 세상 사는 이치라고 생각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 고향엘 갔더니 
고향집 앞 느티나무가 옛날처럼 커져 있다.
내가 늙고 병들었구나 이내 깨달았지만,
내 눈이 이미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진 것을,
나는 서러워하지 않았다.

다시 느티나무가 커진 눈에
세상이 너무 아름다웠다.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져
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이 더 아름다웠다.

- 신경림, 「다시 느티나무가」-

*여담이지만 졸업을 한 후 교가가 바뀌었다는 소문이 전해졌다.
이 글을 쓰며 홈페이지에 확인해 보니 실제로 바뀌어 있었다.
교가의 가사 중 "맑고 고운 중랑 흐름 영원한 그 모습 ··· "은 내가 초등학교 졸업반일 때부터 문제였다.
중랑천이 색깔이 거무튀튀해지고 악취가 나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맑지도 곱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스케이트나 썰매를 타고 오면 옷에서는 시궁창 냄새가 났고 그 많던 물고기들은 점차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중랑천변으로는 판잣집들이 꼬리를 물고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교가에는 봉화산은 남고 중랑천은 빠져 있었다.

중랑천의 '꼬방동네'는 여름철이면 빠지지 않고 학교 마당에 천막치거나 교실로 들어오기도 하던 수재민들로 기억된다. 봉화산에 올라 옛 모교를 내려보다 보니 그곳에서 함께 학교에 다니던 동갑내기들이 생각났다. 그들은 그후 어디서 어떻게 살아왔으며 나처럼 늙어가고 있을까?

 

장마의 기억

장마철마다 서울은 수도(首都) 아닌 '수도(水都)'가 되곤 했다. 매년 한두 번씩 중랑천 물이 넘쳤다. 아버지와 청량리를 다녀올 때면 버스 창문 너머로 거센 흙탕물이 다리 교각을 휘감으며 위압

jangdolbang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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