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과 사진/멕시코 및 중남미

깐꾼 CANCUN 에서 놀다6 - 거침 없는 시공간

by 장돌뱅이. 2012. 6. 4.

커튼을 열자 파란 호수와 그 위로 광활한 하늘이 시원스레 눈에 들어왔다.
밖으로 나가 해변을 따라 남쪽으로 걸었다.
바다는 어제보다 한결 잔잔해져 투명함을 회복한 듯 보였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푸른 빛이었다.
푸른 빛으로 비어 있었다.

다시 새로운 하루가 그렇게 텅 빈 채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뭔가로 채울 필요가 없는 시간.
우리는 그 빈 시간을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그리고 자유는 그렇게 거침 없는 곳에서 온다고 했다.

 

 

 

 

파도소리와 바람소리 속에 수영을 하는 아내의 물을 헤집는 소리가 차분하게 들려왔다.
읽던 책을 덮고 누운 자세로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젊은 시절 우리가 만나고, 사랑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알거나 알지 못하는 숱한 우연과 우연이 만든 필연으로,
기억하거나 기억지 못하며 살아온 그 무수한 날들이,
이제 수영을 하는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지금이,
따뜻하게,
그러나 어떤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문득 아내는 몸짓을 멈추고 하늘을 보며 누워 유유자적 물 위를 떠다녔다.
그 주위로 물결이 잔잔하게 일었다.

 

 

 

저녁 늦게 숙소 근처에 있는 옛 마야인의 유적지인 엘 레이 EL REY에 갔다.
버스로  10분이 채 안걸리는 거리였다.

엘레이는 1200년에서 1500년 사이의 마야인들의 거주지였다고 한다.
해변과 같은 방향인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이 유적지는
멀리서라면 굳이 일 삼아 찾아 올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되지만
해변 호텔존 HOTEL ZONE 의 남쪽에 머무는 사람이라면
느긋한 산책길로 삼을만  한 곳이다.

이곳에서도 많은 이구아나가 눈에 띄었다.
무너진 건축물의 석재가 만드는 공간이며 틈새가
이구아나가 살기에 적절한 모양인 것 같았다.
우리 시대의 콘크리트와 달리 생명이 깃들 수 있는
자연을 넣어 건물을 지을 줄 알았던
옛 사람들의 지혜 덕분이었을 것이다.

 

 

 

 

 

 

 

 

엘레이를 나와 해변을 따라 호텔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아내의 손을 잡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사이, 어느 새
수평선에 걸린 뭉게구름이 사위어가는 분홍색의 저녁을 불러모으고 있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