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꾼에서 배편으로 30분 정도의 거리에 작은 섬, 무헤레스가 있다.
길이가 8킬로미터에 폭이 300에서 800미터 정도라니
마음만 먹으면 걸어서도 한바퀴 돌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이다.
멕시칸어(스페인어)로 ISLA MUJERES라고 한다.
ISLA는 섬, MUJERES는 여자를 뜻하는 MUJER의 복수형이다.
그러니까 '여인들의 섬'이라는 뜻이겠다.
론리플래닛에는 섬 이름의 유래에 관하여 두 가지 설명이 나와 있다.
한 가지는 옛날 스페인 해적들이 무역선과 인근 항구에서 해적질을 하는 동안
자신들의 여자들을 이 섬에 남겨두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16세기 초 스페인 사람들이 이 섬을 찾았을 때, 돌로 지어진 사원과
흙으로 만든 여인 동상이 매우 많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달과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마야인들의 여신 이스쩰 IXTZEL 의 동상이었던
것이다.
그 어느 것이 맞는 설명이건 현재 섬에는 여신들의 동상도
캐리비언의 해적 '잭스패로우'의 과부들도 남아 있지 않다.
유적이라기에는 너무 미미한 돌무더기 정도의 흔적이
몇 곳엔가 남아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알고 모르고는
무헤레스섬을 관광하는데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음은 물론이다.
무헤레스섬을 '배낭여행자의 깐군'(BACKPACKER'S CANCU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들었다. 이 말은 관광지로서 이 섬의 특징을 잘 설명해준다.
깐꾼과 같은 날씨와 환경을 허름한 숙소와 카페를 이용하여
경제적인 비용으로 즐길 수 있는 곳이라는 뜻이겠다.
그러나 '구멍가게 공동체'들을 그냥 두고볼 요즈음의 세태나 '큰돈'들이 아니어서
이 조차도 벌써 옛 이야기가 되어간다고 한다.
어제 하루를 수영장에서 쉬었으니 오늘은 무헤레스섬의 해변에서 쉬어보기로 했다.
섬으로 가는 첫배를 타기 위해 일찍 호텔을 나섰다.
아침 식사도 섬에 가서 하기로 했다.
호텔 앞을 지나는 깐꾼 해변의 유일한 대로인 꿀꿀깐 블러바드 KULKULKAN BLVD.에서
버스를 탔다. 이른 시간이어서 버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선착장이 있는 또르뚜가스 해변 PLAYA TORTUGAS 까지 가는 도중에
결혼 일주년 여행을 왔다는 젊은 인도계 미국인 부부가 탔을 뿐
아무도 타고 내리는 사람이 없었다.
깐꾼 시내가 아닌 해변의 구조는 간단하다.
남북으로 육지의 끝부분이 '7'자 형태로 가늘게 뻗어 있고,
꿀꿀깐 대로를 가운데 두고 해변쪽으로는 대형 호텔이,
반대쪽으로는 식당과 쇼핑몰 등이 자리를 잡고 있는 형태이다.
골목길이나 이면도로가 없이 대로변 양쪽으로 보이는 것이 시설물 전부인 것이다.
버스는 이른 아침에서 밤늦도록 다니고 자주 있는 데다 가격도 저렴해서 편리하다.
배의 꼭대기 자리에서 바람과 햇살을 맞으며 바다를 건넜다.
시원은 했지만 햇살의 강도가 만만치 않아 아내와 선크림을 발라야 했다.
또르뚜가스를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배 앞쪽으로 무헤레즈섬이 눈에 들어왔다.
섬에 도착하여 선착장을 빠져나오자 골프카 대여 영업을 하는
'삐끼' 아저씨들이 소란스럽게 맞아주었다.
우리는 해변에서 쉬기 전 골프카로 섬을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섬에 대단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닌 터라 골프카 운전 자체가
무헤레즈섬의 명물이라면 명물인 셈이었다.
원래 밧데리로 움직이는 골프장의 골프카와는 달리 이곳 섬의
골프카는 기름을 사용하게끔 개조를 하여 소리가 오토바이처럼 요란했다.
골목을 돌며 잠시 골프카 적응 시간을 보내고
섬의 남쪽 끝단을 향해 본격적으로 큰길 운전에 나섰다.
호텔에서 주는 공짜 식사를 거부하고 길을 나선 데는 시간을 맞추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섬의 중간쯤, CARIBBEAN HWY.(하이웨라고 해도 골목길보다 좀 큰 정도)를 달리다보면
만나는 꼴로니아 COLONIA, 에 있는 망고카페에 들르기 위해서였다.
급작스런 깐꾼행이었지만 인터넷에서 본 이 카페를 마음 속에 담아 두었던 것이다.
우리는 프렌치토스트를 주문했는데, 모양새가 특이하면서 맛도 괜찮았다.
카페의 주인은 로리 LORI 라는 이름의 미국인이었다.
4년 반 전에 위스콘신 WISCONSIN 의 매디슨 MADISON에서
이곳으로 와 카페를 열었다고 한다.
무슨 사연으로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상냥하면서도 활기찬 주인장의 모습에서 신명이 우러났다.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다시 요란스런 골프카의 굉음을 들으며 섬의 남쪽 끝단에 도착했다.
입장료가 있었다. 입구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큰 기대를 걸지 않은 채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끝'을 보기 위해서, 아니 '끝'이 주는 어떤 망망함을 느껴보기 위해서.
괜히 입장료를 받기가 민망했던지 공원 안에는 이곳저곳에 설치(예술)물을
여러 개 세워놓았다. 그러나 어여쁜 사극 주연 배우의 손톱에 발라진 메니큐어처럼
어색하고 생경스러웠다.
바다와 파도와 절벽과 초록의 풀과 화사한 햇살만 있어야 할 곳이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구태여 인간의 흔적이 필요하다면 비록 무너져내리는 돌무더기였지만
섬의 끝단에 있는 마야인의 사원터만으로 충분해 보였다.
자연에 대해 겸손함이 사라진 21세기의 영악함이
먼 옛날보다 항상 더 문명적인 것은 아니다.
폐허가 된 마야 사원을 비롯한 섬의 곳곳에 이구아나들이 눈에 띄었다.
다가가면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몸을 피하는 녀석들은 투박하지만
순박한 외형을 지니고 있었다. 엣 마야인들의 모습이 그랬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내도 나도 자연 상태의 이구아나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공원을 나와 북쪽으로 향했다. 특별한 목적지 없이 이리저리 도로 주변의
풍경들을 훓으면서 이번에는 북쪽 끝단까지 갈 생각이었다.
*위 사진 : 망코카페 여사장님이 알려주어 가보게 된 팻트병 만든 인공섬. 작지만 이층의 살림집에
정원과 나무도 있었다..
섬의 북쪽 끝에는 해변이 있었다. 이름도 '북쪽 해변'이라는 뜻의 쁠라쟈 노르테
PLAYA NORTE였다. 우리는 파라솔이 씌워진 의자를 빌려 자리를 잡았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였다. 이곳에서 수영과 휴식을 즐긴 후 저녁 무렵쯤
오전에 내린 선착장으로 돌아가 깐꾼으로 돌아가는 배를 탈 예정이었다..
쁠아쟈 노르테는 깐꾼의 바다와는 달리 파도가 잔잔하고 경사가 알맞아
물놀이를 즐기기에 좋았다.
해변에서 보는 수평선은 사람에게 모험심을 부추긴다지만
우리에겐 커다란 수영장의 테두리처럼 보였다.
구태여 그 경계 너머의 또 다른 무엇인가를 상상하거나 꿈꾸고 싶지 않았다.
모험은커녕 우리는 파라솔 밑에 안돈한 '보수주의자'가 되고자 했다.
바닷물에 몸을 담갔다가 말리는 일 이외에 다른 일은 불필요했다.
몸에 묻는 물기를 거두어가는 햇살과 바람의 감촉이 나른했다.
다시 낙지처럼 늘어졌다.
예정대로 저녁무렵 돌아가는 배를 탔다.
숨이 멎을 것 같은 커다란 감동이 없이 평범한 풍경에
평범한 하루였지만 배에서 맞는 저녁 바람이 상쾌했다.
욕심을 부리지 않는 하루.
그것조차 의식적으로 하지 않으려고 깐꾼에 온 것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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