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 : 이번 여행의 루트, 샌디에고 - 티후아나 - 엔세나다 - 부파도라 - 과달루페 밸리.
지난 8월, 6개월만에 한국에서 아내가 돌아왔다. 아내가 온 지 며칠이 지나면서 홀애비로
지내는 동안의 흐트러졌던 집안 살림의 모양새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먼지들이 사라진 가구들은 본래의 윤기를 되찾았고, 흐트러졌던 옷장과 찬장 속이
반듯해지고 가지런해졌다. 빈 냉장고는 채워지고 이곳저곳 쌓여있던 쓰레기들이 사라졌다.
퇴근길 불이 켜져 있는 창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일상은 다시 따뜻해졌다.
나는 다시 아내와 여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아내의 부재 중에 상상하고 계획했던 이런저런 여행이었다.
혼자 지내는 동안에도 샌디에고 주변을 돌아다니기는 하였지만 내게 아내가 동행하지
않는 여행은 여행이 아니라 사전답사가 된다. 혼자 떠도는 시간의 감미로움도 매력적이나
그보다 동행하는 아내의 감탄 목소리를 듣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고 편안하게
아내와 나눌 수 있는 두서없는 이야기들이 좋기 때문이다.
나는 겨우 시차에 적응한 아내에게 그 첫번째로 멕시코 여행을 제의했다.
멕시코여행이라니 한국에서는 멀고 거창해보이지만 내가 사는 샌디에고에선 10여 분만 차를
몰고 가면 닿는 국경이라 당일치기 여행일 뿐이다.
"멕시코 치안은 좀 나아졌나?"
아내는 잠시 멕시코의 치안상태를 염려했다.
국경도시 티후아나의 안전
2006년 초 멕시코의 국경 도시 티후아나 시에 사업체를 갖고 있는 한 한국인이 몸값을 노린
몇 명의 멕시칸에 의해 납치당했다가 절대절명의 순간에 극적으로 탈출한 적이 있다.
말로만 듣던 멕시코 지역의 안전 문제가 얼굴을 알고 있는 지인의 경우가 되면서 한층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공단 모임에서는 지역 강력 범죄의 증가 추세를 염려하며 업무시간
외에 가급적 멕시코 지역에 머물지 말라는 공문을 보내왔다.
첨부된 신문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A wave of kidnappings has hit Tijuana, Mexico, just across the border from
San Diego. Citizen's groups say more than 150 people have been kidnapped
for ransom over the last year.
그날이 마침 직원들과 저녁 회식을 약속한 터라 나는 멕시칸 직원 한 사람을 불러 물어보았다.
티후아나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었다.
나 - “요즈음 티후아나의 치안 상태가 안좋다고 하던데....”
직원 - “그다지 신경 쓸 것 없다. 그런 일은 대부분 마피아들 사이의 일일 뿐이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나 - “그럼 안전하다는 말이냐? 한국인도?... ”
(직원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자신으로선 유모어라고 생각하는 듯한 말을 꺼냈다.)
직원 - “적어도 서울 꼬레아 보다는 안전하지 않겠느냐.”
(그는 한국에 와본 적이 없다.)
나 - “서울이 왜 티후아나보다 위험한 곳이라고 생각하느냐?”
직원 -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면 북한은 미사일로 서울을 공격을 할 것이니까.”
나 - “미사일?!!! 푸하하하하”
예상치 못한 그의 대답에 나는 실소를 터뜨렸다.
그는 그 몇 해 전에 핵 관련한 문제로 남과 북의, 혹은 북미간의 정치적 긴장 상태를 염두에
둔 듯 했다. 나는 그의 빠른 이해를 위해 2002년 월드컵을 상기시키며 서울의 안전함을
강조해 보았다. 그는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멕시코의 티후아나보다 서울이
안전하다는 사실은 납득하지 않는 듯 했다. 생각해 보니 멕시코는 우리 보다 앞서 월드컵을
두 번이나 치룬 나라였다. 국제적적인 행사를 치뤘다는 것이 일반인들의 안전을 보증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었다. 어쨌든 그날 저녁 우리는 예정대로 티후아나에서 회식을 가졌고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위 사진 : 티후아나 시 외곽의 산허리에 들어선 달동네
2008년부터 샌디에고에서 본격적인 주재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아내와 함께 차를 몰고
티후아나를 지나 바하 캘리포니아 BAJA CALIFORNIA 남쪽으로 여행을 하고자 했다.
굉장한 볼거리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나로서는 업무차 매일 넘나들어야 하는 국경이지만)
차로 국경을 넘는 일 자체가 아내에겐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미국과는 여러가지 면에서 너무나 다른 멕시코의 모습도 아내와 공유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나의 생각에 제동을 걸고 나온 사람이 뜻밖에 전에 '안전 티후아나'를 주장하던
그 직원이었다. 상황이 변했다는 것이다. 2006년 취임한 멕시코의 새로운 대통령이
마약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마약 카르텔 간의 영역 다툼과, 혹은 마약 조직과
군경찰들과의 '전투' 로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그 무렵 출퇴근 길의 국경 검문소와 거리 곳곳에서 무장을 한 연방군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공권력의 단속이 강화될수록 마약조직의 준동도 격해지는 느낌이었다. 매주
월요일이면 직원들은 두려운 얼굴로 지난 주말에 있었던 티후아니 지역의 끔찍한 총격
살인 사건들을 전해주었다. 마약과 상관 없는 일반 범죄들도 덩달아 기승을 부리는 듯
했다. 어떤 회사는 업무 시간 중에 무장 강도를 당했는가 하면 점심 시간에 식당에 강도가
들어 손님들의 주머니를 털어갔다고 하기도 하고 또 다른 회사는 제품을 출고 하는 차량을
강탈 당했다는 소문도 들렸다.
그는 멕시코 정부가 벌이는 일이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공권력의 상층부가 이미 마약 조직과 손을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불신감은
그만의 특별한 견해가 아니라 대부분의 멕시코인들이 긍정하는 일반화된 정서였다.
*위 사진 : 티후아나의 강력 사건을 보도하는 신문들
그의 예상이 들어맞기라도 하듯 2008년과 2009년,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점점 더 최악으로
치달았다. 멕시코 정부는 25만이 넘는 군 병력과 엄청난 금액의 예산을 '마약과의 전쟁에
투입하였지만 3만 명에 가까운 인명 손실만 남긴 채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비전투지역의
사망 통계로는 세계 최대이다.
실례로 미국 정부가 2010년 7월에 발행한 문서 "TRAVEL WARNING"에 따르면 가장 위험한
국경 도시인 (인구 130만의) 씨우닷 후아레스(CIUDAD JUAREZ)에서는 2009년 한해 동안 무려
2900명이 살해되었고 그 외에 차량절도가 16,000 건, 차량 강도는 1,900건에 아르렀다고 한다.
마약 조직은 자신들의 이권에 걸림돌이 되면 상대가 누구든 무자비한 보복을 가했다.
다른 조직원은 물론이고 군인과 경찰, 정치인과 성직자와 언론인 등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경찰과 군대는 마약 조직으로부터 ‘플라타 오 플로모(PLATA O PLOMO)’, 곧 뇌물을 받던지
죽음을 받던지 선택하라는 공공연한 협박을 받는다고 한다.
폭력의 근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마약에서 나오는 막대한 이권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넘어 '황금 거위를 낳는 거위'로 불리는 이 '비즈니스'의 이권의 근원은 55조원(약 490억 달러)
으로 추산되는 세계 최대의 마약 시장인 미국이다. 콜롬비아 등의 남미에서 생산된 마약은
멕시코 조직들의 유통 경로를 통해 미국에 공급되어 소비되며 완결 구조를 갖는다.
마약조직들은 이 막대한 자금으로 다시 미국에서 무기를 구입하여 자체 무장을 강화한다.
이른바 '마약과 돈과 무기'의 연결 고리이다. 멕시코의 폭력 사태가 단순히 멕시코만의
문제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낯설다는 사실만으로 세상의 모든 첫 여행지는 찾는 이에게 긴장감을 준다.
직접적인 생명의 위험이 도사린 곳을 구태여 찾아가고픈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연이 지닌 위험은 도전과 극복의 의미라도 동반하지만 인간에 의한
인간 생명의 위협은 야만 이상의 의미일 수 없다.
*위 사진 : 미국에서 멕시코로 넘어가는 국경 도로. 보통 멕시코로 가는 도로는 막히지 않고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오는 도로가 미국 쪽의 입국검사로 교통 체증이 심한 편이다.
그러나 아내와 여행을 가려던 첫날은 무슨 일인지 멕시코로 넘어가는 도로가 심하게
막혀 우리는 여행을 일주일 뒤로 미루어야 했다.
여행관련 사이트의 티후아나 지역에 관한 질문도 당연히 '안전'에 관한 것이 많았다.
많은 미국인들과 캐나다인들이 '안전' 때문에 멕시코 여행을 망설인다는 통계도 있었고
실제로 티후아나 지역도 지난 몇 년간 여행객들이 급감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안전에 대한 여행사이트의 대답은 뜻밖에(?) "SAFE" 가 대부분이었다. 마약
관련한 일을 하지 않거나 미국에서도 불필요한 행동을 티후아나에서 하지 않는다면
안전하다는 것이었다.
It's safe to be in ROSARITO/ENSENADA/TIJUANA provided you are not involved
in any way with drugs and don't do things that wouldn't be smart in the U.S. either:
wander around drunk, alone, in "bad parts" of town in the small hours of the morning.
We live in Rosarito; neither I nor my friends is concerned about.
- ENSENADA TRAVEL FORUM 중에서 -
이번 여행을 앞두고 다시 회사 직원에게 티후아나의 안전을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이
무엇이건 아내와 국경을 넘을 생각이었고 내가 스스로 매일 접하는 티후아나의 분위기로
보아 좀 나아진 것 같았지만 나는 그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더니
괜찮아질 것이라고 했다.
나 : "이젠 마약 조직들이 소탕되었다는 말이냐?"
직원 : "아니다 마약 조직은 소탕될 수 없다. 주지사가 바뀌어 마약 조직들에게 유화책을
쓸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지난 2년과 같은 극한의 폭력을 쓰지 않을 것이란 뜻이다."
마약과의 전쟁에서 실패한 멕시코정부는 올 여름 있었던 지방선거에서 야당에게 참패를 했다.
그로 인해 마약의 부분적인 합법화까지 검토 중이라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한국적 사고 방식으로는 안전해진 것이 아니라 더 혼란스러워진 느낌이다.
어느 지역의 안전과 위험의 정도나 경계를 절대적으로 정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여러 보도와 통계 자료로 볼 때 여행지로서 멕시코의 객관적인 위험성이 높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곳이 여행조차 할 수 없는 곳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미리 말하자면 아내와 나의 티후아나를 거쳐 그보다 남쪽으로 100키로미터 떨어진
엔세나다로의 여행도 평온했다. 사람들은 '어떤 일이건 일어날 수 있다'는 말로 멕시코
국경 도시의 상황을 요약하곤 한다. 다음과 같은 말도 그런 범주에 속한 말이다.
WHAT YOU HAVE THOUGHT OR READ ABOUT MEXICAN BORDER TOWNS IS TRUE.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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