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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멕시코 및 중남미

깐꾼 CANCUN 에서 놀다(끝) - 천리향

by 장돌뱅이. 2012. 6. 4.

샌디에고로 돌아오는 날이자 아내의 '실제' 생일이었다.
나도 그렇지만 아내도 서류상의 생일과 실제의 생일이 다르다.
50년대 어떤 공무원 아저씨의 근무 자세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아내 몰래 호텔 직원과 사전에 상의를 해두었다.
친절한 직원은 염려하지 말고 시간만 정해 달란다.

시간에 맞춰 식당을 내려갔다.
약속한 창가 자리에 케익을 준비해 둔 것이 보였다.
주변에 식당 직원들이 예닐곱명 서 있었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챈 아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자 직원들이 축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내는 함박꽃처럼 웃었다.
내가  축하의 말을 건넬 쯤 딸아이의 전화가 왔다.
아내가 상황을 설명하자 딸아이는 '오우! 구준표놀이씩이나!' 라고 했다.
"구준표? 하긴 뭐 내가 구준표처럼 생기기도 했잖아."
나의 말에 딸아이의 대답은
"그렇게 말하면 내가 화가 나거든!" 이었다.

   세상에 천리향이 있다는 것은
   세상 모든 곳에 천리나 먼
   거리가 있다는 거지
   한 지붕 한 이불을 덮고 사는
   아내와 나 사이에도
   천리는 있어,
   등을 돌리고 잠든 아내의
   고단한 숨소리를 듣는 밤
   방구석에 쳐박혀 핀 천리향아
   네가 서러운 것은 진하디진한 향기만큼
   아득한 거리를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지
   얼마나 아득했으면
   이토록 진한 향기를 가졌겠는가
   향기가 천리를 간다는 것은
   살을 부비면서도
   건너갈 수 없는 거리가
   어디나 있다는 거지
   허나 네가 갸륵한 것은
   연애 적부터 궁지에 몰리면 하던 버릇
   내 숱한 거짓말에 짐짓 손가락을 걸며
   겨울을 건너가는 아내 때문이지
   등을 맞댄 천리 너머
   꽃망울 터지는 소리를 엿듣는 밤
   너 서럽고 갸륵한 천리향아            
                     - 손택수의 시, "아내의 이름은 천리향"-

'내 숱한 거짓말에 짐짓 손가락을 걸며 겨울을 건너가는 아내'여!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시라!

 

 

 

 

 

 

그리고.....
가벼운 진동을 남기며 비행기가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깐군에서 지낸 며칠도 충분한 행운이었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창가 자리에서 깐꾼을 바라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바다는 여전히 화려한 푸른빛이었다.
아내와 함께  고개를 빼고 내려다보다
자꾸 멀어지는 바다에 어린 아이들처럼 손을 흔들어 작별을 고했다.

안녀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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