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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부활 축하합니다"

by 장돌뱅이. 2012. 4. 11.

*샌디에고 인근 바실리카성당의 예수상

지난 일요일은 부활절이었다.
연초에 아내와 올해만큼은 재의 수요일에서 부활절에 이르는, 수난과 부활의 사순시기를 천주교 의식에 따라 지켜보자고 약속을 한 바 있다. 세례를 받은 교인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의무사항이겠으나 종교적 소양과 믿음이 기초부터 부실한 우리는 그 ‘당연’을 자못 굳은 결심을 하고서야 행동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번 일을 전기 삼아 앞으로 매년 사순절을 지키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선택한 종교의 중요한 행사에 한 번은 직접 참석하여 경험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다분히 형식적으로 행동에 옮긴 것일 뿐이다.

미사가 끝나고 사람들과 “HAPPY EASTER!”, 혹은 “부활 축하합니다!”의 인사를 나누는 기분이 가벼웠다. 솔직히 ‘그 분’의 부활이 주는 의미와 기쁨을 만끽해서라기보다는 40일 동안의 이러저러한 교리상의 절제 사항에서 (혹은 아내와 내가 스스로 정한 약속의 굴레에서) ‘해방’되었다는 가벼움이 더 컸다고 해야겠다.

매주 금요일 금육(두 번의 금식 포함)을 하고 저녁엔 ‘십자가의 길’을 바쳤다.
'십자가의 길'은 예수가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열네 가지의 중요한 일들을 그린 성화를 따라가며 기도를 바치는 일이다. 부활절 3일 전인 성목요일에는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겨준 행위를 재현하는 세족례가 있었다. 그리고 예수가 숨을 거둔 성금요일, 토요일 부활 전야와 부활절의 미사가 이어졌다.

글로 적으니 거창한 의식을 치러낸 것 같지만 사실 몸만 참석했다가 오는 일을 반복한 터라 대단치 않은 일이었다. 금육을 해야 하는 금요일마다 고기를 더 먹고 싶어지는 ‘반골성 이상징후’가(?) 좀 문제이긴 했지만 그것도 일주일에 한 번이니 큰 문제는 아니었다.

어쨌든 사순절의 의식을 ‘풀코스’로 경험해 보았다^^. 적극적이지 못한 매우 수동적인 참석이었으므로 사순절의 알맹이라고 할 절제와 참회에는 얄팍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토요일 전야 미사에서 신부님은 부활의 의미를 새로움이라고 했다.
어제와는 다른 오늘. 죽음이 아닌 생명, 절망이 아닌 희망.....
그러나 아내와 나는 아직 부활 이후의 예수를 잘 실감하지 못한다.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분 오른편에 앉았다가 다시 죽은 이와 산 이를 심판하러 온다는 위압적인(?) ‘말씀’에도 별로 겁먹질 않는다. 이쯤 되면 부실한 신자가 아니라 아예 불신자가 아니냐고 누가 뭐란다 해도 뭐 사실이니 할 말이 없다. 그래도 세상에 태어나 동족과 외세에게 박해를 받아서 죽기까지 그가 고난의 여정 속에 남긴 말과 행동의 의미를 겸허한 마음으로 헤아려 보고 싶어 적어도 당분간은 성당에 나가 앉을 것이다.

*4월 11일. 이곳 시간으론 내일이고 한국에선 오늘이다. 선거일이다.
우리의 선거는 늘 절박하다. 아직 기본적인 민주주의조차도, 사회정의도, 민족의 화합도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탓이다. 게다가 우리가 이룩했던 작은 것마저 지난 몇 년 간 철저하게 잃어버린 탓이다.
국토는 몸살을 앓았고 사람들은 절망했다. 용산에 새 건물을 짓겠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을 죽이기까지 했다. 투표가 끝난 저녁 한국에서 들려오는 새로움으로 가득한 소식을 기대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이웃들과 가슴 벅찬 인사를 하고 싶다.
“부활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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