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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아침가리 - 영혼에 닿아 있는 공간

by 장돌뱅이. 2012. 9. 18.

일년에 최소한 네 번씩은 강원도 인제의 아침가리골을 찾는 친구가 있다. 그에게
왜냐고 묻는 것은 무의미한지도 모른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엔 많이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의당 그래야 하는 것이기에 대답하기 힘든
법이다. 그에게 아침가리골은 단순히 숲이나 계곡이라는 트레킹의 대상지가 아니라
그의 내면에 닿아 있는 순결한 영혼처럼 보인다.

4월 말 그와 함께 아침가리골을 걸었다. 나로서는 2년 전 진동리에서 아침가리분교까지
걸어본 이래 두 번째이다. 이번에는 지난 번과 반대의 방향을 잡았다. 살기 불편한
오지였기에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오래 전에 집을 비우고 떠났지만 덕분에 아침가리골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비할 곳이 없을 정도로 깨끗하고 맑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런 곳을 볼 때마다 인간이라는 종족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지구는 지금보다 훨씬
아름다운 곳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침가리골에는 서둘러 온 봄과 아직 물러서지 않은 겨울의 끝자락이 함께 있었다.
이곳저곳의 양지쪽에는 산발적으로 피어난 봄꽃이 화사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빈 가지를 허공에 세우고 있는 숲은 잿빛을 다 버리지 못한 채로 남아 있었다.
어느 새 알에서 깨어난 작고 까만 올챙이들은 뼈가 저릴 정도로 차가운 계곡의 물속에서
앙증맞은 헤엄을 치고 있기도 했다.



우리는 계곡을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물을 따라 아래 쪽으로 내려갔다. 그럴 때마다
바짓가랑이에 물을 적셔야 했지만 그것은 유쾌한 경험이자 짜릿한 쾌감이었다.

물소리와 바람소리 그리고 우리가 물을 건너거나 숲을 지날 때 스치는 소리만이
계곡을 울리면서 밀도 높은 적막함을 더욱 깊게 했다.
우리는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고 이야기를 나눌 때도 목소리를 낮추어야 했다.

*2006년 5월25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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