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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동키' 돌아오다

by 장돌뱅이. 2012. 9. 18.



인대가 늘어난 탓에 한달간이나 하고 다니던 깁스를 푼 지 채 며칠이 되지 않아

의사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던 딸아이가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귀국하는 날 아침,
아내와 인천공항에서 파리발 비행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비행기는 예정시간을 훨씬 넘겨서야 도착했다.
'지연'이란 전광판의 글씨가 '착륙'-'도착'으로 바뀐지
한참이 되어서도 딸아이는 출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결정적인 순간에 출몰하는 '정의의 사도'를
기다리 듯 아내와 나는 출구의 문이 열릴 때마다 긴장을 했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딸아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와 눈이 마주친 딸아이는 함박 웃음을 지어 보였다.

집으로 오는 차안에서 아내와 내가 각오(?) 하고 있던 딸아이의 무용담이 이어졌다.
여행 내내 현지의 맥도날드를 주식으로 삼은 탓에 당분간 좋아하던 빵은 떠올리기가
싫다는 이야기부터
친절했거나 어이없이 불쾌했던 사람들과 기대 이상으로 아름답거나 실망스런 풍경에
대해서 쉬임없이 수다를 떠는'동키" 앞에 아내와 나는 귀찮은 표정을 지을 수 없는
'슈렉'이 되어야 했다. 친구들이 딸아이를 왜 영화 슈렉의 '동키'라고 부르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던 터였다.

그녀의 부재동안 우리는 사실 그 수다에 목말라 했던 것이다.
뒷 좌석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재잘거림을 들으며
강변도로를 달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가볍고 흥겨웠던 것은,
창문을 열자 밀려들어오는 바람이 유난히 싱그러웠던 것은,
꼭 지루했던 장마가 끝난 탓만은 아니었다.

*2006년 7월31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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