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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빈대떡과 팥죽이 있는 추석

by 장돌뱅이. 2012. 10. 8.

명절은 겨레붙이나 친지에 대한 느낌이 절실해지는 날이다.
특히 이국에서 맞는 명절은 더욱 그렇다.
전화로 나누는 인사만으론 허전한 공간이 더욱 크게 느껴질 뿐이다.

사람들과의 인연과 추억을 빼고난 명절은  역시 음식일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 여느 때와는 다른 어머니의 부산한 움직임과
집 안팎에 퍼지던 온갖 부침을 부치는 소리와 냄새로부터
어린 시절의 명절 분위기를  기억한다. 

이번 추석은 마침 일요일이라 예년처럼 출근할 필요가 없어
샌디에고에서도 제법 명절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아내와 빈대떡을 부치기로 했다.
그것도 아내의 지시를 받아가며 내가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
송편은 떡집에서 사왔지만 한 가지라도 명절 음식을 만드는 것으로
썰렁할 수도 있는 미국에서의 추석 분위기를 살려보기로 한 것이다.

녹두와 찹쌀 그리고 숙주나물과 돼지고기를 샀다. 사온 재료를 가다듬고 
집에 있던 신 김치와 고사리를 썰고 삶아서 준비를 했다.

믹서기에 간 녹두와 준비한 재료를 넣고 걸쭉한 반죽을 만들었다.
후라이판에 기름을 두르고 국자로 반죽을 퍼올려 동그랗게 모양을
잡아가며 노랗게 부쳤다. 적절한 시점에 빈대떡을 뒤집어 반대면을
익히는 것이 중요했다. 아내가 요령을 알려주고 시범을 보여주었지만
성급히 뒤집다 아직 덜 익은 상태의 반죽을 찢어먹기도 했다.


*위 사진 : 붉은 고추와 파란 고추를 잊어먹고 사오지 않아서 장식은 좀 떨어지지만 맛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기대이상이었다.

첫번째로 구워져 나온 빈대떡은 '고수레'를 핑계로 맥주와 없앴다.
빈대떡 맛에 대해 아내는 내가 만든 모든 다른 음식처럼 후한 평가를 내려주었다.
연 이은 몇번의 빈대떡도 구어지자마자 모두 맥주와 함께 소비되었다. 
생각보다 반죽의 양이 많아 빈대떡을 부치는 일은 밤 늦게까지 계속되었다.
배가 불러 더 이상 소비하지 못한 빈대떡이 비로소 접시 위에 쌓이기 시작했다.
아내는 뒷날 식은 빈대떡을 비닐로 쌓아서 냉동실에 넣었다.
필요할 때 꺼내서 데우거나 다시 기름에 부쳐먹으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빈대떡을 한번 만들고 난 소감?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먹지..." 하는 옛 노래 가사는
바뀌어야 한다. 이제 빈대떡 재료는 그리 싸지도 않거니와 무전취식의
무책임한 사람과 수고로움이 있어야 만들어지는 빈대떡은 어울리지 않는다.

추석과 어울리는 음식은 아니지만 아내가 좋아하고 주말의 시간도 넉넉하여
팥죽도 만들어 보았다. 찹쌀 새알심이 들어간 팥죽이었다.
이제까지 내가 끓인 죽이 주로 멸치 육수를 우려내서 이것저것을 넣는
비교적 간단한 것이라면 팥죽은 좀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팥을 삼아 으깨서 앙금을 걸러내는 일과 찹쌀을 불리고 갈아서 새알심을
만드는 일은 모든 과정이 처음인 나로서는 아내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녹록치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수고로운 노동 끝에 만들어진 팥앙금은
부드럽고 은근했으며 새알심은 쫄깃했다.

추석 전에 만든 죽도 올려본다.
먼저 홍합죽. 

한인슈퍼에서 사온 뉴질랜드산 홍합을 끓여 만들었다.
삶은 홍합에서 우러나온  뽀얀 국물이 한국에서 먹었던 대합죽을 생각나게 했다.
아내가 대만족하여 두번이나 끓여먹었다.

약간 김치와 콩나물, 무 등을 넣어 매콤새콤하게 낙지죽도 끓였다.

가장 최근에 끓인 죽으로는 옥수수죽이 있다.
*위 사진 : 노란 옥수수죽. 사진 속 거뭇거뭇한 것은 흰쌀로 하지 않고 그냥 아내와 내가 일용하는 잡곡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생옥수수를 사다가 알갱이를 발라내어 믹서에 간 후 껍질을 분리해내고
쌀(밥)과 함께 끓이다가 우유를 조금 넣었다.
아내는 우유냄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맛은 만족했다.
죽이라기보다는 스프에 가까운 맛이 났다.

 



추석날 이야기로 로 돌아가 계속하면 저녁에 알고지내는 이웃집에서 초대를 해서 갔다.
뜰에 빨간 석류가 익어가는 집이었다.
역시 명절은 사람들이 어울려 떠들석해야 제맛이다.
아이들 재롱을 보는 것도 필수다. 

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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