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아이가 어렸을 적에 “우유는 어디에서 나오지?” 하는 물음에
젖소라는 대답대신에 “전자렌지”라고 답하는 통에 온 식구가 웃은 적이 있다.
매일 아침 제 엄마가 전자렌지에서 데워주는 우유를 보며 아이는 우유는 언제든
전자렌지 문을 열면 저절로 나오는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지난 2개월 동안 아내는 몸이 아팠다.
날마다 병원을 오가며 진찰을 받고 약을 먹으며 고통을 이겨내는 아내를 가슴 아프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가 조카아이와 같은 생각으로 살아온 것은 아닌가 스스로를
책망하며 반성하게 되었다.
퇴근 시간에 맞춰 김이 나는 맛난 찌개와 반찬의 저녁밥이 ‘늘’ 준비되어있었고,
식사를 마치면 말을 하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는 과일이 깎아져 나왔다.
옷장 속에는 몇 벌의 와이셔츠가 잘 다려져 가지런히 걸려있으며,
간 밤에 내가 어질러 놓았던 책상과 책장은 깨끗하게 정리 되어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먼지가 쌓이지 않은 가구는 반짝이며 ‘저절로’ 윤이 났고
휴지통은 버린 기억만 있는데도 늘 깔끔하게 비워져 있었다.
내게 모든 것은 늘, 당연히, 저절로 그렇게 되어 있었다.
나는 그냥 먹고 자고 입고 책을 읽고 휴지를 버리고 지내는 것으로 충분했고
세상은 평온했다.
그러나 아내가 끙끙거리며 자리에 누워 힘들게 아픔을 이겨내는 며칠동안 모든 것은
어긋나기 시작했다. 밥통은 뚜껑만 열면 밥이 나오는 마술상자가 아니었고
남은 찌개도 불을 켜야 덥힐 수 있었다. 별 먹은 것이 없는 것 같은데도 그릇은 양념이 묻은
채로 씽크대 속에서 메말라갔고, 불과 며칠 사이에 냉장고 신선실에는 과일이
사라졌다. 넘쳐나는 것은 빨래와 쓰레기뿐이었다. 가구는 빛을 잃어갔고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도 전에 없던 뽀얀 먼지들이 묻어났다.
아내가 수십 년 동안 말없이 감당해왔던 일들이 아내의 손길이 잠시 떠나자마자
이곳저곳에서 반란을 일으키며 집안과 나의 규칙과 질서를 허물고 있었다.
우유가 까닭 없이 전자렌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듯이 세상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아내 혼자 감당해온 노동이 만들어낸 ‘당연’이었던 것이다.
아픈 몸을 비비며 걸레를 손에 잡는 아내를 다시 요 위에 눕히고 서툴게나마 내가
그 일을 대신하며 내가 생각했던 평온과 규칙과 질서는 기실 아내의 노동 위에
군림하던 거짓에 지나지 않는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아내의 아픔도
그런 나의 무관심과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몰랐다.
우유는 풀을 뜯는 젖소의 수고로움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2006년 7월25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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