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의 영화 <<A Few Good Men>>.
군부대 내에서 발생한 한 사병의 사망과 관련하여 변호사와 완고한 기지 사령관인 대령이 법정 공방을 벌였던 영화로 기억된다. 사망의 진실은 '군기'라는 명목으로 한 사병에게 가해진 불법적 폭력(특수 기합) 때문이었지만 군은 이를 은폐하려 한다.
심지어는 그 폭력이 '국가를 위해서' 정당했다는 인식마저 가지고 있다.
나의 알량한 영어로 'a few'는 '(긍정적인 의미로) 몇 명이나 몇 개'가 있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이게 맞다면 'A Few Good Men'의 직역은 '소수의 선량한 사람들'쯤이 될 것이다.
이 말은 또 미군 해병대의 표어로도 사용된다. 해병대 모집 포스터에 'We are looking for a few good men.'이라는 표현도 등장한다고 한다. 머릿숫자만 많은 오합지졸보다는 소수정예의 똑똑한 몇 명이 낫다고 해병대의 자부심을 부각하는 의도일 것이다.
'누구나 해병대가 될 수 있다면 나는 해병대를 지원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말과 비슷해 보인다.
영화의 제목은 진실을 밝히려고 고군분투 하는 '소수의 선량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진실을 호도하고 은폐하려는 완고한 군의 허위를 풍자한 것일까?
어쩌면 그 두가지를 다 담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30년 전 허리우드가 만든 가상의 영화는 '확장 버전'으로 지금 우리 사회에 현실로 투사되고 있다.
장마로 불어난 강물에 '작전'이라는 명령으로 들어가야 했던 한 젊은 해병의 죽음의 진실과 책임 소재를 밝히려는 국회청문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덕적 책임감이나 명예를 잃지 않으려는 모습은 'A few'였고 'A little'이었다. 대신에 책임을 낮은 계급의 잘못된 판단으로 축소·전가하고 오로지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려는, 왼쪽 가슴에서 어깨에 닿도록 뜻 모를 화려한 장식으로 가득한, 힘 있는 자들의 치졸한 행태와 궤변만 흥건했다.
꽃다운 젊은이의 죽음 앞에도 등장한 '국가 안보'라는 어마무시한 논리라니!
비를 맞으며 세차를 하였습니다.
오가는 이마다 한마디씩 하였습니다.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이등병 아들이 귀대하는 날이었습니다.
- 윤효, 「세차」-
나는, 또 누구는, 모두 이런 어머니의 이런 자식인 것이다.
눈을 부라리고 목에 힘을 주며 때로는 '격노도 한다'는 온갖 오만(傲慢)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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