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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저하의 낮잠

by 장돌뱅이. 2024. 7. 1.

"어린이집에서는 밥 먹고 나면 뭐 하지?"
"자요."
"점심 먹었으니까 이제 잘까?"
"아~니∼요."
어린이집 선생님들께 듣자면 어린이집에서 저하는 오후 낮잠 시간에 누구보다도 먼저 잠자리에 드는 모범생이라고 한다. 그런데 집에서는 전혀 아니다. 집에서 낮잠을 자는 것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문 경우다. 그런 말을 하면 어린이집 선생님은 못 믿겠다며 놀란단다.
물정 모르는 나이 같지만 어느새 저하도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는 눈치를 터득한 것이다.

저하가 낮잠을 자려면 적어도 이 정도쯤의 에너지는 소비해야 한다.
집에서 노는 것만으로는 잘 소진이 되지 않는다.
최근에 맛을 들인 자전거를 타고 집에서 제법 먼 곳까지 떠나야 한다.
가는 도중에 배달오토바이나 공원을 가꾸는 아저씨들의 전기카트가 있는지 유심히 살펴서 한번쯤 운전석에 앉게 해줘야 한다.

땀벅벅이 되어 집으로 돌아와 간식을 먹고 샤워를 하고 나면 행동이 뜸해지다가 마침내 잠이 든다.
나와 아내는 저하가 로보캅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걸 확인한다.

배경음악은 AI sunu에서 생성했다. 제목은 'Slow Baby'이다.

한 일 년쯤 내다보고 사는 자는
돈을 모으고
한 십 년쯤 미리 보고 사는 자는
나무를 심고
한 백 년쯤 크게 보고 가는 자는
시를 쓰고
한 천 년쯤의 긴 혜안을 가진 자는
늘어지게 낮잠만 잔다.

- 임보, 「낮잠」 -

낮잠이 장차 저하에게 '돈을 모으고 나무를 심고 시를 쓰고 긴 혜안을 지닐 바탕'이 되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저하가 눈을 감으면 덩달아 세상이 적막해진다. 그 옆 가만히 누워 나도 눈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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