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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모기의 여름

by 장돌뱅이. 2024. 7. 4.

장마와 여름이 시작되었다. 더불어 모기철도 함께 시작되었다.
식구들 중에 유독 모기들에게 인기가(?) 많은 나는 산채길에서든 집에서든 십여 차례 그놈들에게 원치 않는 헌혈을 해야 여름이 지날 것이다.
아내는 나와 함께 있으면 모기에 안심한다.
아내에겐 관심이 없고 나에게만 달려들기 때문이다.
그럴 때 나는 "봐! 나랑 결혼 잘했지?" 하고 억지 공치사를 해대기도 한다.

결혼 전 아내의 별명은 모기였다.
'그 모기'는 내게 별 관심이 없어 나만 혼자 애가 닳아 그  주위를 맴돌아야 했다.
'맴돌았다'는 것은 순화시킨 표현이고 '껄떡거렸다'는 표현이 적절할 수도 있다.
그 당시 또 좋아하던 시인 조태일의 「국토」 연작시 1편 제목이 하필 「모기를 생각하며」여서 나는 그것이 무슨 나의 사랑시라도 되는 양 걸핏하면  '모기 씨' 앞에서 읊어대곤 했다.

올해 첫 모기의 습격을 받았다. 자다가 팔다리가 가려워 비몽사몽 긁어대다가 귓가에서 '앵'하는 앰뷸런스 소리를 듣고서야 놈이 왔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다른 곳은 들어올 곳이 없으니 단골(?)을 찾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온 놈이 현관문을 통해 왔을 가능성이 유일하다. 
복도에서 틈을 노리다가 사람들이 출입을 할 때 혹은 택배 물건을 들여놓을 때를 노렸을 것이다.

일단 놈의 습격을 인지하게 되면 자는 걸 포기하고 괴롭더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놈과 게릴라 전을 벌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매일 새벽녘마다 가려운 고통을 반복해서 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에프킬라나 모기향이 없이 벌이는 전투는 인내력이 필요하다.
불을 밝히면 놈은 철저히 자신을 은폐하고 어딘가에서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책장과 벽 사이의 작은 공간으로 들어가 숨는 날에는 날을 새는 경우도 있다. 끈질기게 의심이 갈만한 곳을 건드려보고 눈을 빛내다 보면 어느 순간 놈이 날아오른다.
그 순간을 노리거나 놈을 눈으로 추적하여 다시 앉은 곳에서 덮쳐야 한다.

간밤에도 손바닥에 피를 묻히고서야 전투가 끝났다.
기왕 잠을 설쳤으니 다시 잠을 청하는 대신 책을 읽었다.
부적의 효력이 있기를 바라며 모기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아침에 이 그림을 본 아내는 '모기가 너무 귀엽다'고 했으니 그런 힘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거시기 슈퍼 아저씨와 엘리베이터를 타면 그는 자기 집 층수보다 한 층 위에서 내려 계단을 걸어 내려간다 이유를 물으니 자기 집 앞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리면 함께 탔던 모기들도 우르르 같이 내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기가 들리지 않을 만한 소리로 복선생도 그렇게 해보라는 충고를 해준다 그 뒤로 나는 모기가 많은 여름날이면 부러 그 집 앞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려서 두 층이나 걸어 올라간다 참 나쁜 습관이다

- 복효근, 「어떤 나쁜 습관」-

우리 아래층이나 위층에 사는 이웃은 '거시기 슈퍼 아저씨'와 달리 점잖은 분들이다.
나는 물론 앞으로도  내가 사는 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릴 것이다.

모기는 한자로 '문(蚊)'이라 쓴다.
"취문성뢰(聚蚊成雷)"는 모기가 떼를 지어날며 우뢰 소리를 낸다는 뜻으로 '소인배들이 사실을 왜곡하여 열심히 남을 헐뜯고 욕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내 경험으로 잠결엔 모기가 한 마리만 날아도 우레 소리가 난다.
속 시끄러운 지금의 세상도 그런 것 같다. 하물며 국회에만도 100'석(마리)'이 넘게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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