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나에게 천주교 교리를 가르쳐 주신 수녀님께서 '무더위를 식혀줄' 책이라며 『장일순 평전』을 보내주셨다. 읽는 동안 정말 더위를 잠시 잊을 만큼 마음이 편안해지는 책이었다.
무위당(无爲堂) 장일순은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원주에서 살았고 원주에 묻혔다.
그는 가난한 화가에게 자기 담뱃갑을 건네주고 자신은 길에서 꽁초를 주워서 피는 사람이었고, 소매치기를 당한 사람에게 돈을 찾아 돌려주면서 또 동시에 소매치기에게 손해를 끼쳐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사람이었다. 잠든 아내에게 부채질을 해주어 더위를 쫓아주는 사람이었고, 좌절하거나 힘들어하는 주변의 노래꾼, 예술가, 활동가, 장애자, 자영업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용기를 주었다. 그는 항상 낮은 자세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구체적으로 응답하는 사람이었다.'
심지어는 자신을 감시하는 경찰에게까지 따뜻한 덕담을 건넸다.
이영희 교수의 말을 빌면 그는 또한 '숨소리를 내기조차 두려웠던 군부 독재 시절 치열하게 싸우다 비틀거리는 자에게 용기를 주고, 싸움의 방법을 모색하는 이에게는 지혜를 주었다. 그의 집은 동지들이 찾아가는 오아시스였다. 회의를 고백하는 이에게는 신앙과 신념을 주었고, 방향을 잃은 이에게는 사상과 철학을 주었다. 그는 상처받은 가슴을 쓰다듬는 위로의 손을 주면서도 언제나 공과 영예는 후배들에게 돌리며 평생을 '한 알의 작은 좁쌀(一粟子)'로 자처하며 살았다.'
그래서 그의 집은 늘 찾아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장일순 평전』에는 그런 그의 일화들이 무수히 실려 있다.
80년 대 그러니까 시인 김지하가 오랜 감옥 생활에서 풀려나 출간한 장시 『대설(大說)』과 『밥』을 출간했을 때 그의 사상의 넓이와 깊이에 압도당하며 읽었던 적이 있다. 특히 『밥』은 구구절절이 신선하게 와닿는 말들로 가득해서 김지하의 선각자적인 깨달음에 긍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80년대라는 시대 상황에 비추어 너무 한가로운 이야기는 아닐까 고개를 갸웃하며 읽어야 했다. 마치 집에 불이 나서 사람들이 죽고 있는데 원론적인 소방법규를 뒤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작은 이야기'(小說)가 아니라 '큰 이야기'(大說)을 하겠다는 장시『남(南)』은 온갖 경계를 넘나드는 듯한 거침없는 활발함과 김지하 특유의 현란한 필법은 있지만 시적 소양이 없는 나로서는 이전의 그의 담시가 보여주었던 촌철살인과 시대정신을 읽어내기 힘들었고, 만국활계남조선(萬國活計南朝鮮)의 '깊어지고 넓어진' 생명사상도 추상적이고 사변적이며 모호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80년대라는 시대적 긴박함이 더욱 그런 느낌을 들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서정시집 『애린』에서 느껴지는 어떤 산뜻하고 살가운 기운만이 그래도 김지하를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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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글 : 2022.05.13 - "그것이 지금이라면" 중에서)
『장일순 평전』을 읽으며 김지하의 사상이 시인 스스로의 치열한 독서와 사색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장일순과 사상적 교류를 통해서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장일순은 '이질적으로 보이는 사상들을 아무 모순 없이 커다란 용광로처럼 융화시켜 나가는 사람이었다. 천주교 신자였지만 생활양식은 노자적이면서도 불교적이고, 불교적이면서도 기독교적이었다. 그는 단지 가톨릭의 규율은 물론 어떤 이념이나 종파에도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장일순은 '동학(東學)에서 생명운동에 대한 비전을, 그리고 생명의 철리를 노자에게서 발견하였다.'
그는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곧 "조그만 티끌에도 우주 전체가 들어 있다"는,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목숨을 가지고 태어난 것들은 그 어느 것도 하찮은 미물이라고 외면하지 않으며 깊은 주의를 기울여 공경의 자세'로 대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극히 세세한 일상 속에서 철저하게 실천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인간은 모두 자기 안에 '한울님'이라고 불러도 좋고 '부처'라고 불러도 좋고 도(道)라도 불러도 좋고 무엇이라고 불러도 좋은,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가도 없고 한도 없는 근원적 생명을 산 채로 모시고 있다는 생각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 김지하, 『밥』 중에서 -
김지하의 말년이 어쨌든 80년대와는 다른 시대인 지금 '생명사상'은 시대적 담론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김지하는 '인간해방의 열쇠가 '생명'이며 생명의 가장 철저하고 창조적이며 전위적인 담지자가 바로 민중이며, 천대받는 민중이 가장 고상한 한울님이요 참생명'이라고 했다.
나는 그것을 김지하의 것이자 장일순의 것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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