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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광복절

by 장돌뱅이. 2024. 8. 15.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頭蓋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 심훈, 「그날이 오면」-

원래 1930년에 쓰인 시라고 한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발표되지 못하고 광복 이후인 1949년에야 발표될 수 있었다.

저하의 방에 걸린 포스터

방학 동안 우리나라 역사에 부쩍 관심이 많아진 손자저하 1호가 뜬금없이 물었다.
"할아버지 이승만은 어떤 사람이에요?"
"??? ··· 어떤 사람? ···"
내가 머뭇거리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나쁜 사람이에요? 좋은 사람이에요?"
"글쎄 ··· 나쁘고 좋고가 아니고 잘못한 일도 있고 잘 한 일도 있겠지?"
나의 두리뭉실을 어린 저하가 예리하게 파고든다.
"뭘 잘못하고 뭘 잘했어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일제 강점기 폭력과 수탈, 그에 대한 저항의 역사를 호도하고 왜곡하려는 자들이 정부 요직을 차지하고 온갖 요설을 어지러울 정도로 쏟아내는 시절 아닌가. 왜 그런 질문을 하냐고 되물으니 자신이 읽는 책을 꺼내 보이며 무슨 이유에서인지 '전쟁이 났는데 한강 다리를 끊은 건 잘못'이라고 분개하듯 단언을 했다. 나는 적당히 얼버무리며 '곤경'에서 벗어나야 했다.
학교에선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해방된 지 4년 만에 우리는 또 한번 매국을 했다. 민족의 혼과 정기를 송두리째 팔아버린 반민족행위처벌법(이하 반민법)의 사실상 폐기가 바로 그것이다. 정신이 굳건하면 잃은 땅도 되찾을 수 있지만 정신이 나가면 지닌 땅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민족혼을 팔아넘긴 반민법 폐기 즉 제2의 매국은, 땅덩어리를 팔아넘긴 제1의 매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반민족의 엄청난 죄악이었다.

- 임종국, 『실록 친일파』 중에서 -

요즈음은 제2매국보다 더한 '제3의 매국'이 활계를 치고 있다.
다시 반민족행위처벌법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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