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트리움 리버사이드는 이름 그대로 강변에 있는 호텔이다.
아침에 일어나 피트니스 센터와 수영장을 둘러보았다.
특히 수영장은 아내와 나의 태국 방콕을 여행할 때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차트리움의 수영장을 강과 접해있어 시원스러운 전망을 갖고 있었다.
수영자의 구조 자체는 평범하고 물속에서 보는 수질의 투명도가 떨어졌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
호텔을 둘러보고 방으로 들어와도 아내는 아직 한밤중이었다.
한국에서부터 아내는 대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고, 나는 아내보다 일찍 자고 일어나는 편이긴 하지만 오늘은 특별히 야간비행의 피로가 쌓인 것 같다. 잠든 아내 머리에 '깨어나면 카톡'을 보내라는 메모를 남기고 다시 호텔 밖으로 산책을 나섰다.
여행이 기본적으로 낯선 곳을 서성이는 것이라면 여행 첫날 나의 아침 산책은 그에 부합된다.
회사 일로 여행으로 수십 번은 방문한 방콕이지만 매 순간의 풍경은 늘 새롭다.
지나가는 사람이 다르고 햇살의 농도와 감도가 다르고 바람과 냄새가 다르다.
여행이 이름난 관광지를 돌아보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본지는 오래되었다.
산책에서 돌아와 잠에서 깬 아내와 식사를 하고 매번 하듯 수영장 죽돌이·죽순이가 되어 시간을 보냈다. 수영을 하고 나와 누워 하늘을 보다가 책을 읽기도 하고 눈을 감고 바람 소리와 강을 오르내리는 배 소리를 듣기도 했다. 여행은 일상의 틈을 벌려 한가한 시간을 버는 것이다. 그것은 '노느라 바쁜' 백수에게도 해당된다.
(은퇴를 하고 여러 백수들과 모임 일정을 잡다 보면 은퇴 전보다 더 복잡할 때가 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사실 삶의 패턴이 단순해서 날짜와 시간 정하기가 오히려 쉽다. 하지만 백수들은 저마다 다양한 소일거리를 가지고 있어서 그 사이에 공통의 여백을 찾기란 종종 '고등수학'이 되곤 한다.)
원래 호텔 근처 국숫집에서 점심을 할 예정이었지만 그냥 풀바에서 간단히 해결했다
태국 첫날이라 대표음식이라 할 팟타이와 땡모빤, 카오니아우마무앙을 시켰다. 각각 볶음밥, 수박주스, 망고찰밥을 뜻하는 태국말이다. 왠지 이렇게 불러야 태국에 온 맛이 난다. 갓 튀긴 감자도 더했다.
맛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모두 다 그렇지는 않지만) 호텔 음식보다 길거리 음식점이나 노포에서 더 쨍한 태국음식의 맛을 느낄 수 있는 확률이 다른 곳보다 태국에선 조금 높은 것 같다.
점심을 먹고 수영으로 물을 한 번 더 적신 후에 아내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 숙소에서 제공하는 셔틀보트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 수상교통과 지상철이 만나는 '사톤 선착장(Sathorn Pier)까지 가서 짜런끄룽(Chareon krung) 길을 따라 걸었다.
이 길을 따라 계속 가면 야오와랏(Yaowarat) 로드와 이어지며 방콕의 차아나타운을 형성한다.
오래된 건물, 엉킨 전깃줄, 차량들의 소음과 매연, 노점상과 행인들이 만드는 번잡함이 비구름이 몰고 오는 후텁지근한 공기와 뒤섞인 거리는 활기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아내와 나도 그런 활기에 섞여 구경꾼이면서 풍경이 되어 길을 따라 걸었다.
길을 걷다가 어섬션 성당 (Assumption Cathedral)을 보았다.
이 성당은 1809년에 프랑스 신부 파스칼이 건립하여 1909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신축되었고, 한국의 명동성당처럼 교구의 중심이 되는 성당이라고 한다. 태국 최초 성인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불교국가로 만 알고 있는 태국에 가톨릭성당이라 이채로웠다.
주위에 중고등학교(?)에 칼리지까지 있어 교세가 만만찮은 듯했다.
미사는 시간이 맞지 않아 참석할 수 없었다. 성당 내부는 불이 꺼져 어두웠다. 아내와 들어가 묵주기도라도 올리려고 했지만 반바지 차림은 출입할 수 없다고 안내판에 쓰여 있어 입구에서 화살기도만 하고 나왔다.
성당에서 다시 큰길로 나와 조금 더 걸어가니 TCDC(Thailand Creative & Design Center)가 나왔다.
태국 정부가 운영하는 디자인 전문 공간이며 도서관이다. 방대한 양의 관련 서적과 작품이 있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공간답게 밝고 산뜻하면서도 차분한 곳이었다.
이곳을 목표 삼은 것은 디자인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내의 체력에 비추어 걷기에 적당한 정도의 거리에 있고 카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카페에서 커피와 차를 마시며 느긋하게 땀을 식힐 수 있었다.
TCDC에는 짜런끄룽 거리와 방콕을 멀리 내려다볼 수 있는 옥상정원도 있었다.
사톤 선착장으로 돌아와서 이번엔 강을 건너 대형쇼핑몰인 아이콘시암을 가는 배를 탔다.
요금은 8밧, 한국으로 약 300원 정도였다.
아이콘시암은 대형 쇼핑몰로 G층에 있는 대형 푸드코트인 쑥시암으로 유명하다.
쑥시암은 태국 길거리음식을 모두 모아놓은 곳이다.
이외에도 아이콘 시암은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온갖 음식들이 층층마다 모여있다. 음식뿐만 아니라 나의 능력으로는 아내에게 쇼핑을 권하기 힘든 명품 매장들도 화려한 장식 속에 줄지어 들어서 있다.
내가 아내에게 많이 사라고 호기를 부릴 수 있는 곳은 태국 상표인 "나라야" 매장뿐이다.
아내가 친구들에게 줄 몇 가지 소소한 기념품을 사고 6층에 있는 팟타이 전문 음식점 "팁사마이"에서 저녁을 먹었다. 팁사마이는 원래 까오산로드 근처에 있어 지상·지하철이나 배편으로 접근하기가 애매하다.
오래전 몸 담았던 여행동호회에서 '궁극의 맛타이'란 칭송을 붙여줄 정도로 이름난 곳이다.
이곳 오렌지주스도 팟타이만큼 유명하다.
그 유명세를 타고 아이콘시암에 진출한 것 같은데 맛은 확실히 본점보다 못하고 가격은 높았다.
직원들은 원래의 팟타이 대신에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의 팟타이를 권했다.
그래도 여행객들로 빈자리가 없어 잠시 대기를 해야 했다.
앞에서 말한 '호텔 음식(화려한 외관의 식당)보다 길거리 음식점이나 노포에서 더 쨍한 태국음식의 맛을 느낄 수 있는 확률이 다른 곳보다 태국에선 조금 높다'는 말의 한 예가 되겠다.
팁사마이 본점의 압도적 승!
다시 배를 타고 사톤 선착장을 거쳐 숙소로 돌아왔다. 강변에 들어선 수많은 호텔의 불빛들이 강물 위에 떨어져 현란하게 출렁거리고 있었다. 방콕의 원래 이름은 길다. 세계에서 가장 긴 이름의 도시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고 한다. 그 이름을 읽어보면 세상에 좋은 것들이 다 들어 있는 것 같다. 출렁거리는 배 위에서 아내와 휴대폰 속에 저장된 방콕의 원래 이름을 읽으며 우리의 여행이, 삶이, 그런 세상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보았다.
"꾸룽텝 마하나콘 아몬 라따나꼬신 마힌따라 아유타야 마하딜록 폽놋파랏 라차따니 부리롬 우돔라차니웻 마하사딴 아몬 위만 아와딴싸띳 싸까타띠야 위싸누깜 뿌라싯 " .
(천사의 도시, 위대한 도시, 영원한 보석의 도시, 인드라 신의 난공불락의 도시, 아홉 개의 고귀한 보석을 지닌 장대한 세계의 수도. 환생한 신이 다스리는 하늘 위의 땅의 집을 닮은 왕궁으로 가득한 기쁨의 도시, 인드라가 내리고 비슈바카르만이 세운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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