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저하와 가끔씩 문자로 대화를 한다.
어떨 때는 카톡을 어떨 때는 문자 메시지를 사용한다.
아침에 손자 저하 1호에게서 문자가 왔다. 개학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저하가 물었다.
"근데 로밍 발신이 뭐예요?"
"헉!······"
당황해서 즉각적으로 회신을 할 수 없었다.
같이 오고 싶어 할까 봐 저하에게는 알리지 않고 왔는데 저하 쪽 휴대폰에 로밍 발신이라고 뜬다는 걸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십여 분간 고민을 하다가 말도 안 되는 회신을 했다.
"전화 연결 방식이겠지?"
일단 얼버무리고 딸에게 사태를 수습해 달라는 뜻으로 연락을 했다.
딸이 알려주었다.
"1호는 할아버지 할머니 여행 간 거 알고 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 여행갔다고 했더니 처음엔 '아, 좋겠다 '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다 파타야가 아니고 방콕갔다고 하니 '그럼 별로'라고 했다는 것이다.
저하는 작년과 올해 우리와 두 번 놀러 간 파타야(그중에서도 물미끄럼틀과 유수풀, 파도풀이 있는 스페이스호텔) 여행을 최고로 꼽고 있었던 것이다. 그 외의 장소는 '별로'인 듯하다.
혹시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미국 뉴욕이었다면 부러워했을지도 모른다.
방콕보다 2배 이상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가는 곳이라는 이유로.
(실제로는 저하에게 부럽거나 서운한 마음이 있었을지 모른다. 이제는 그렇게 말해야 한다는 걸 알만큼 자랐을 수도 있고 딸이 얼마 안 있으면 갈 발리 가족여행으로 달랬을 수도 있다.)
아무튼 다행이었다.
그 바람에 30분쯤 지나서야 정직한 척 제대로 된 답을 보낼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지금 방콕에 있으니까 국제전화로 연결하는 걸 로밍이라고 해."
저하의 답이 왔다.
"네, 알겠어요."
방콕에 와서 저하들과 함께 한 지난 파타야 여행을 자주 들먹이는 건 아내와 나다.
노인네들은 추억을 파먹으며 산다고 하지 않던가.
저하가 좋아하는 망고찰밥과 팟타이를 먹을 때, 수영장에서 노는 또래의 아이들을 볼 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백화점을 오르내릴 때 그렇다. 백화점에서 경찰차가 그려진 티셔츠를 볼 때는 2호를 이야기하고, 손흥민 번호를 새긴 티셔츠를 입은 아이를 볼 때는 1호를 이야기한다.
여행의 많은 순간이 손자저하라는 프리즘을 통과하며 다가오고 지나간다.
나는 보슬비를 맞고 씨앗을 심고
또 접시처럼 하얀 햇살을 받고 있으면
너의 목소리가 내 검은 나뭇가지에 새잎처럼 돋아나네
- 문태준, 「너에게」-
아내는 저하들의 티셔츠 하나씩을 샘플로 가져와 크기를 비교를 해가며 옷을 산다.
저하들이 태어나 자라면서 옷을 사는 건 여행의 중요한 일정이 되었다. 저녁이면 발품을 판 '노획물을 침대 위에 늘어놓고 저하들이 입은 모습을 상상하며 둘이서 흐뭇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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