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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태국

방콕 2024년 8월- 호기심이 있는 아침

by 장돌뱅이. 2024. 8. 22.

여행을 오면 매일 아침 아내가 일어나기 전 혼자 숙소 주변을 산책을 한다.
아내와 같이 가볼 곳을 미리 가볼 때도 있다.
나중에 'VIP'를 버벅거리지 않고 모시기 위해서는 사전답사가 필수다.

동남아는 한국에서와 같은 시간에 일어나도 시차가 있어 매우 이른 새벽이다.
조용하던 거리가 잠에서 깨어나 점점 부산해지는 변화를 지켜볼 수 있다.
비좁고 그다지 평평하지 않은 방콕의 인도나 오토바이와 차들에서 나오는 매연과 노점상에서 풍겨오는 음식 냄새들이 그렇게 나쁘게만은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전생에 이쪽 근방에서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아내가 추측하는 이유다. 내 얼굴빛이 시커먼 것도 ㄱ래서라고 한다.

아침 산책은 가끔씩 암초를 만난다. 도로를 건너야 할 때다.
횡단보도와 육교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90년 대 초 태국에 처음 출장을 왔을 때는 지금보다 더했다.

한번은 내가 묵고 있는 호텔 길 건너편에 있는 식당에서 고객과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길을 건널 수가 없었다. 차와 오토바이가 너무 씽씽 달리기 때문이었다. 내가 주저하며 있는 사이 놀랍게도 태국인들은 익숙하게 길을 건너가고 건너왔다. 그 태연스러움이 마치 도통한 도인 같았다.


나는 움찔움찔 몇번인가를 시도하려다가 끝내 포기를 하고 호텔로 돌아와 컨시어지에게 호텔 차로 도로 건너편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다. 처음에 그는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나의 진지함을 알아챈  그는 '도인'들의 비법을 천기누설했다.
"베이비 스텝!"
천천히, 차가 오면 섰다가 다시 한발짝씩 나가라는 것이다. 하지만 내겐 마치 왼발 빠지기 전에 오른발 들고 오른발 빠지기 전에 왼발 들기를 반복하면 물 위를 걸을 수 있다는  어릴 적 홍길동 만화 속 백운도사의 말처럼 들렸다.  직선으로 50M의 거리를 결국 호텔 차로 왕복을 해야 했다. 


그때로부터 30여 년이 지났다. 방콕의 도로 사정도 많이 좋아졌다.
신호등과 육교도 많아졌고 지상철이 생겨 그곳 역사(驛舍)를 통해서 길을 거널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곳에서는 횡단보도 신호등의 초록불은 여전히 보행자의 권리가 아니라 참고사항이다.
일부 오토바이가 마치 모든 곳에서 통행우선권이 있는 듯이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래도 베트남보다는 훨씬 사정이 좋다.)

하지만 출장과 여행이 수십 차례 반복되면서 이제는 나 또한 도로 횡단의 '도인'이 되었다.
태국인 옆에 바짝 붙어서서 함께 건너가는 '공생(기생?)'의 방법을 깨우치게 된 것이다. 이번 아침 산책 중에는 태국인들을 방패로 삼아 몇 번인가는 무단횡단의 경지(?)까지 오르기도 했다.

무단횡단 하는 '보무당당' 태국학생들

이번 아침 산책에 이제까지와는 다른 목표를 더했다.
혼자 식당을 가서 음식 맛을 보고 나중에 아내와 다시 와도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산책에서 돌아와 아내가 아침 식사를 할 때 나는 과일과 커피의 후식을 먹기로 했다.

안성맞춤이게도 태국의 가게들은 일찍 문을 열고 음식은 양이 적다.
국수 같은 건 두세 번 젓가락질을 하면 끝날 정도다.
국물만 들이키지 않는다면 나의 아침 식사는 그리 부담스러울 저도는 아니다.

아내는 입맛이 크게 까다롭지는 않은 편인데 몇 가지 특정 음식 - 멕시코의 따꼬(또르띠야)와 우리나라 돼지(순대)국밥-엔 고개를 젓는다. 맛 이전에 냄새 때문이다.
아내는 내가 맡지 못하는 땀냄새나 습기 냄새를 맡을 정도로 냄새에 예민하다. 

돼지고기도 그렇다. 어떤 돼지고기는 괜찮은데 어떤 돼지고기는 냄새가 난다고 거부한다.
입이 걸귀인 나는 돼지고기에서는 돼지고기 냄새가 나는 이유이고 그게 바로 우리가 돼지고기를 먹는 법이라고 하지만 그런 설명이 아내의 식욕을 불러오는 데는 자주 실패한다. 이번에도 태국 방콕 아니면 없는 음식이라고 구글의 사진을 보여주며 설득했지만 '서류전형'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아래 식당 두 곳은 미식가라서 아니라 다분히 나의 호기심 때문에, 아내의 입맛에 맞을까 사전조사를 한다는 의미까지 빙자하여(?) 혼밥을 한  곳이다. 모두 다 미슐랭에도 올랐다고 한다. 내게는 (일부러 찾아올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충분히 괜찮은 맛이었지만 아내에게까지 권하고 싶은 음식은 아니었다.

1. 꾸어이짭 미스터 조(Kway Chap Mr. Joe)

바삭하게 튀겨진 돼지 삼겹살은 껍데기는 바삭하고 그 아래 고기와 지방층은 졸깃했다.
흔히 말하는'겉바속촉'이었다. 그걸 소스에 찍어 먹었다.
우리나라 파채만 곁들인다면 소주잔께나 뒤집을 맛이었다.

그 돼지고기를 쌀국수에도 넣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국물이 칼칼하고 개운했다.
옆자리 태국인들은 허파와 간 같은 돼지 내장부위를 함께 넣어서 먹기도 했다.
국수의 형태가 특이했다. 우리나라 수제비를 얇게 펴서 돌돌 말은 모양이었다. 
튀김을 먹은 탓에 국수는 남겨야 했다.

튀김을 좋아하는 아내라 그랩으로라도 배달시켜 먹어보라고 할까 하다가 포기했다.
돼지고기 냄새를 피할 수 없을 듯했고 다른 맛있는 음식이 많은 곳이 방콕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내에게 한번은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어 다른 곳에서 주문을 했다.
예상대로 크게 좋아하진 않았다.)


2. 짜런생 실롬(Chareonsang Silom)

족발(카오무) 전문점이다. 푹 삶은 족발이다.  뼈부위를 젓가락으로 들면 살이 자체 중량으로 미끄러지듯 분리될 정도이다. 백종원 씨도 다녀갔다고 하던가?
그 때문에 우리나라에도 알려져서인지 한국인이 두 팀 정도 앉아 있었다.
족발은 역시 소주를 부르는 맛이었다.
가격은 무척 저렴해서 밥 한 접시와 생수 하나 족발 한 덩어리 해서 8천 원 정도였다.
위 1번  꾸어이 잡 식당의 가격도 비슷했다.

길거리 태국 음식은 대개 비닐 봉다리에 담아서 판다. 차가운 것만 그런 것이 아니라 뜨거운 국물도 그렇게 한다. 아침 식사인듯한 비닐 봉다리 한두 개를 들고 가볍게 걷는 젊은 사람들을 산책길에 자주 본다.
태국 비닐에는 환경호르몬이 없다, 고 말한다면 미친 사람일 것이다.

큰 백화점에서는 비닐봉지를 쓴다고 하면 비용을 받지만 길거리에서 어림없어 보인다.
법과 제도가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겠지만 그것으로 문제는 일거에 해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설픈 '충조평판(충고나 조언, 평가나 판단)'은 문제를 더욱 키울 것이다.
특히나 여행자는 긍정은 아니더라도 눈에 보이는 모습을 사실대로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비닐봉다리뿐만이 아니다. 태국에서 플라스틱 빨대도 흔하다. 모든 음료에 빨대를 준다.
우리 생각으로는 별 필요가 없을 때도 그렇다.
생수를 시켜도 빨대가 나오고 주스를 시켜도 빨대를 준다. 뜨거운 커피에 안 주는 게 다행이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그냥 그렇다.

즐거운 여행을 위해서는 호기심이 필요하다.
낯선 것을 긍정해야 한다. 여행은 낯선 것을 찾는 시간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성급한 '충고평판'은 삼가야 한다.
그것은 편견만을 양산할 뿐이다.
그리고 이런 말과 태도는 여행에만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산책에서 돌아와 함께 식당으로 가면서 아내가 말했다.
"뷔페식당에 커피와 후식만 먹으러 간다? 뭔가 있어 보이는 듯하면서도 미련해 보이기도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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