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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베트남

2024 베트남 - 호찌민

by 장돌뱅이. 2024. 9. 1.

아침 7시 반경 출발 비행기.
새벽에 도착하는 야간 비행기만큼 새벽에 출발하는 비행기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서울 동쪽에 사는 나로서는 적어도 새벽 4시 반에는 출발해야 하므로 잠을 설치게 된다.

며칠 전 태국에 이어 이번 베트남 여행은 사위가 한 달의 근속 휴가를 얻어 가능해진 여행이다.
손자들과 만나야 하는 규칙적 일상에서 마음 편히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된 것이다. 거기에 마일리지가 곧 소멸된다는 항공사의 협박(?)이 예약을 서두르게 하여 좋아하는 시간대를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무슨 상관. 그런 번거로움은 예전의 회사 출장이라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투덜거렸겠지만  놀러 가는 여행에서야 즐거움을 과장하는 다른 표현일 것이다.

아내와 내가 부족했던 새벽잠을 보충하는 동안 비행기는 네 시간 반을 날아 호찌민 떤선녓 공항에 도착했다. 떤선녓은 한자로 '新山一'이다. 新은 '떤', 山은 '선', 一은 '녓'이다.
베트남도 우리처럼 한자문화권이었다.
호찌민이 생전에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는 말이 그래서 가능했을 것이다. 
베트남 통일 후 지명도 많은 변화가 있어 사이공(西貢)은 호찌민(HCMC) 바뀌었지만 떤선녓 공항의 국제코드는 TSN이 아니라 여전히 SGN이다. 나로서는 이유를 알 수 없다. 

호찌민 중심부에 위치한 세도나 호텔(Sedona Suites Hochiminh City)은 특이하게 체크인 카운터가 28층에 있다.  창밖으로 호찌민 시의 시원한 풍경이 배경으로 떠있었다. 

방은 40층에 배정을 받았다. 벤탄시장이 내려다 보였다.

방에서 내려다 본 풍경

아내를 잠시 쉬게 하고 나 혼자서 길을 나섰다.
이틀 뒤 무이네(Muine)로 가기 위해 데땀거리에 있는 풍짱(Futa)버스에서 표를 끊기 위해서였다.
1킬로 남짓한 거리여서 걷기로 했다. 걸으면서 거리의 풍경을 보는 것이 아내와 나의 여행이다.
아내는 거리의 오토바이 질주를  걱정하며 조심히 다녀오라고 했다.
베트남 하면 떠오르는 오토바이의 위협적인 질주와 매연 그리고 소음을 아내와 나는 '하노이 오케스트라'라고 부른다. 첫 하노이여행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요란스러운 거리와 오토바이의 질주는 여전했지만 출퇴근 시간대가 아니어서인지 여유가 있었고 그렇게 위협적이진 않았다. 신호등도 여러 곳 있었고(물론 초록불에도 사주경계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지만) 몇 해전보다 전체적인 교통법규를 지키는 문화가 많이 좋아진 듯 예상보다 편안한 산책이었다.
최근에 알게 된 베트남에서 도로 횡단 시 주의 사항 한 가지.
- 초록불의 횡단보도에서도 절대 뒤로 물러서지 말 것!.
행인이 앞으로 간다고 예상한 오토바이 운전수가 바로 뒤를 파고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와 나는 베트남 쌀국수보다 바게트샌드위치인 반미(Banh Mi)를 좋아한다. 이제까지 베트남의 어느 도시에서건 길거리 노점상이나 식당 어느 곳에서든 반미를 먹고 실망한 적이 없다. 
호이안에서는 숙소 직원의 추천을 받아 아침 식사 대신에 길거리의 반미를 사 먹은 적이 있을 정도다.

풍짱버스에서 돌아오는 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곳에 유명한 식당 반미 후옌 호아(Banh Mi Hyunh Hoa)가 있었다. 여기서 유명하다는 뜻은 '구글에서 높은 평점을 받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식당 앞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식당이 그랩 배달 기사용, 일반 방문자용, 일반포장용, 이렇게 세 곳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 같은데 어느 곳이나 줄이 길었다.
현지인과 외국인이 반쯤 섞여 있는 것 같았고 외국인의 3분의 1은 한국인인 것 같았다.

나도 두 개를 포장해 왔다.
빵이 커서 한 개만 주문해도 아내와 나로서는 충분했을 양이었다.
맛은? 아내와 나의 입맛으로는 솔직히 이제까지 먹어본 반미 중 가장 맛이 떨어졌다.
왜 유명해졌는지 이해할 수 없는 곳이었다. 결국 '구글은 신'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좋은 평점을 보고 가면 이 세상에 맛없는 식당이 없고, 나쁜 평점을 보고 가면 이 세상엔 가볼 식당이 없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판단은 결국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심판의 오심도 경기의 일부이듯이 예상과 어긋난 일들도 여행의 일부이다.

주문배달할 반미를 기다리는 그랩맨들

컨시어지에게 시티투어버스 호핑투어 정보를 얻어 나가려는데 비가 쏟아졌다.
우리는 호텔 옆 쇼핑몰 사이공센터로 들어가 비를 피하고 구경을 했다.
원래도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겠지만 베트남 독립기념일 연휴기간이어서인지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커피숖에는 발 디딜 틈이 없어 달달한 코코넛커피나 쓰어다 커피도 먹을 수 없었다.
우리는 주전부리거리를 사가지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유튜브로 음악을 틀어놓고 비 오는 창밖을 내다보며 맥주를 마셨다.
"아, 좋다!"
아내가 말했다. 
여행은 비가 와도 좋은 것이다. 

저녁식사도 멀리 갈 것 없이 숙소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낮에 체크인을 할 때 로비 옆에 미슐랭에 등재되었다는 표지를 내건 식당을 봐두었던 것이다.
라이(來)라는 이름의 광동식 중식당. 알고 보니 세도나 호텔에 속하지 않은 독립적인 식당이었다.

가격대는 좀 있지만 한국에 비해서는 여전히 저렴하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여행은 돈을 벌러 오는 노동이 아니라 이럴 때 이렇게 쓰기 위해서 오는 '창조적' 즐거움 아니겠는가.
집 기둥뿌리가 흔들릴 정도의 과소비가 아닌 한.   

분위기도 서비스도 맛도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Chicken Pow with X.Q sauce
Nyona Seafood Dumpling
Golden Taro Lined Shrimp Balls
Codfish Bisque Soup
Taro Lava Sesame c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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