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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베트남

2024 베트남 - 호찌민 3

by 장돌뱅이. 2024. 9. 3.

호찌민의 첫 아침.
밤새 비가 요란하더니 아침 하늘이 맑았다.
기온도 내려가 얼굴에 부딪는 공기의 촉감이 상큼했다. 

자는 아내가 깰까 살짝 문을 닫고 나와 혼자 산책을 했다.
인민위원회 청사와 호찌민 동상을 지나 노트르담성당과 그 옆 중앙우체국까지 걸었다.
지난 여행 중에도 걸은 곳이라 방향과 길이 낯설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면서 걸었다.
이럴 때 기도를 해도 '그분' 보시기에 나쁘지 않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다른 생각으로 빠지기 일쑤이던 보통 때와 달리 정주행의 기도를 했다.

2016년 여행 때의 노트르담성당

성당은 수리 중이라 비계(飛階)에 둘러싸여 있어서 성당 앞 성모상에서 화살기도를 올렸다.
조국 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해서!, 는 아니고, 그저 이번 여행도 즐겁게 하게 해 달라는 ······,  한국에 있는 손자저하들이 행복하게 하루를 보내게 해달라는 ······, 지극히 소소하고 개인적인.

수리 중인 노트르담성당
중앙우체국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니 아내는 벌써 일어나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옆자리에 벌렁 누워 산책길에 만난 것들을 주저리주저리 설명하다 식당으로 갔다.
업무 출장처럼 무엇을 해야 하는 부담과 긴장이 없는 아침 시간은 느긋하다. 

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아침에 내가 걸은 길을 복습하며 걸었다.
휴일을 맞은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이 광장으로 몰려나왔다.
태국어와 중국어를 합친 듯한 느낌의 베트남 말소리를 들으며 아내와 나는 광장을 오르내렸다. 
하릴없이 빈둥거리기 외에 여행에 더 필요한 무엇이 있는지 아내와 나는 알지 못한다.

아내는 이번 여행에서도 마음에 드는 손자저하들의 옷을 찾아 '삼만리'를 빼놓지 않았다.
고급 상표에 탐닉하거나 대량으로 구매하지 않으면서 마음에 드는 옷을 찾아 끈질기게 발품을 팔았다.
비효율적이라고 나는 투덜거리지만 여행에 효율, 비효율이 있을 리 없다.


함께 등산을 다닐 때 초등학교 저학년의 딸아이에게 말하곤 했다.
"모든 산에는 게으름뱅이 언덕이 있지. 힘이 들어 돌아서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곳이 바로 그곳이야. 거기서 돌아서면 바로 게으름뱅이가 되기 때문에 그렇게 불러. 어떻게 할까?"
그 말장난이 효력을 발휘해선지 딸아이는 힘을 내서 걷곤 했다. 제법 높은 산까지 함께 오른 적도 있다.

딸아이가 자라 가족여행을 할 때면 엄마와 둘이서 쇼핑몰을 돌곤 했다.
딸아이를 위한 팬시상품이나 학용품 한두 가지 사는데도 왜 몰 전체를 도는 것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뒤에서 따라갈 뿐이었다. 어느 땐가 내가 지리산 종주 보다 더 힘들다고 주저앉자 딸아이가 다가와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으며 말했다.
"아빠 모든 쇼핑몰에는 게으름뱅이 층이 있어······ "

'지리산 종주'를 끝내고 마사지를 받았다. 벤탄 시장 근처에서였다.
아내는 핫스톤(Hot Stone) 마사지를 나는 태국 마사지를 받았다.
아내는 만족, 나는 그저 그런. 

마사지를 받고 숙소로 돌아와 수영을 할까 하다가 그냥 수영장을 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1일 1수영'이란 동남아 여행 수칙을 지키지 않았지만 수영장의 의자에 앉아 주변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수영장에 잔잔한 물결을 만들며 지나갔다. 

벤탄시장 근처에서 바라본 숙소

숙소와 좁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사이공 스퀘어라는 쇼핑몰이 있다.
서울 동대문 근처의 의류 상가와 비슷한 느낌이 나는 이곳은 온갖(특히 옷 종류) '짝퉁' 상품으로 유명한 곳이다. 나이키나 아디다스는 물론이고, 몽끌레어, 캐나디안 구스, 보스, 톰포드, 보스, 말콤 등의 쟁쟁한 상표들이 비좁은 통로에  들어선 고만고만한 가게들에 시장 물건처럼 쌓여 있고 걸려 있다.

한국 사람들이 이곳에서 구매 큰손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아내와 나의 외형을 보고 한국인임을 짐작해서인지 대부분의 상인들이 한국말로 물건을 사라는 권유를 해왔다.
아내와 내가 갔을 때는 서양인들은 드물게 보였고 대부분 동양인, 특히 한국인들이었다. 
근처 벤탄시장에서는 서양인들이 많았던 것과 대조가 되었다.

우리나라사람들이 (짝퉁이라도) 명품에 대한 갈망이, 타인에게 보이고 싶은 욕망이 강한 것일까?  잠깐의 방문을 경험으로 일반화하여 결론 지을 수는 없지만 몇 해전 미국  방송의 보도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CNBC는  모건스탠리의 통계를 인용하여 "한국인의 2022년 사치품 소비 지출이 168억 달러(약 20조 9천억 원)로 전년 대비 24% 증가하였다"고 보도했다. 이는 1인당 324달러로 중국(55달러)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280달러) 보다 많은 수치이다. 한국인들이 사치품 시장에서 세계 최대 '큰손'이 된 것이다. CNBC는 한국인의 사치품 선호 이유로 부동산 가격 급증과 함께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내와 나는 짝퉁도 싫지만 가격흥정에도 자신이 없어 구경만 하고 돌아왔다. 

그러는 사이 저녁이 되었다.
걸치는 명품에는 능력이 없지만 먹는 '명품'에는 용감한 우리에게 반가운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하루 전에 갔었던 미슐랭 식당 "라이"로 갔다.
가급적 어제와는 다른 새로운 음식으로만 골라서 주문을 했다.
여행 와서 인상 쓸 일이 없는 법이지만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는 더욱 그렇다.

Cod Fish Dumpling with Egg White and Dried Scallop
Popcorn Shrimps on Lettuce wrap, Creamy Butter Sauce & Tropical Fruits
Crispy Sesame Tofu with Salt and Pepper
Honey Glazed Pork with Salted Egg
Taro Lva Sesame Cake

앞 여행기에서 말한 것처럼 식사 후에 식당 베란다에서 독립기념일 축하 불꽃놀이를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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