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이네(Muine)는 호찌민에서 200여km 떨어져 있는 해변 마을이다.
호찌민에서 풍짱버스( Phương Trang 혹은 Futa Bus, https://futabus.vn.)를 타고 갔다.
무이네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선 출발 예약 시간 1시간 전에 먼저 데땀(DeTham) 거리에 있는 버스 사무실로 가야 했다. 그곳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45분 정도 이동하니 버스터미널이 나왔다.
새로 지어진 듯 깨끗하고 널찍했다.
풍짱버스 창구에 버스표를 보여주니 내가 타고 갈 버스의 번호를 적어주었다.
그 번호를 들고 내가 타고 갈 버스를 찾아야 했다.
애초부터 게이트를 지정해 놓으면 더 편리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는 이층으로 되어 있고 좌석은 3열로 배열되어 있다.
뒤로 거의 누울 수 있을 정도로 등받이가 젖혀져서 흔히 슬리핑 버스라고 부른다.
버스에 탈 때 특이하게도 신발을 벗어서 제공된 비닐봉지에 넣어 각자의 자리에 보관하게 되어 있다. 버스는 기사 외에 젊은 남자 조수가 함께 타서 운행을 도와주고 손님에게 이런저런 안내를 맡는다. 사무실에서 표를 끊을 때를 빼곤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문제는 있지만 베트남에서 장거리 이동에 전체적으로 괜찮은 수단이었다.
무이네까지 가는 네댓 시간 동안 세 번인가 휴게소에 정차했다.
버스에서 내릴 때 벗어두었던 각자의 신발을 다시 신을 필요가 없게끔 문 앞에 슬리퍼를 마련해 두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몰랐던 아내와 나만 신발을 신고 나갔다.
호찌민을 떠나 한 시간여 만에 들른 휴게소는 규모가 컸으나 생긴 지 얼마 안 된 듯 바닥이 비포장 상태였다. 나머지 휴게소는 시골 읍내 작은 정류장처럼 아담했다. 그런 곳에서 내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무이네에 다가오자 정류장이 아닌 것 같은데도 차를 세우고 사람들을 내려줬다.
그런데 가는 도중 문제가 생겼다.
고우영 만화 임꺽정에 나오는 서림이처럼 생긴 조수가 다가와 요 앞에서 내려줄 터이니 택시를 타고 가라는 것이었다. 무이네의 숙소 앞에서 내려준다고 사무실에서 티켓을 끊을 때 말했고(그것은 나에게만 베푸는 특별한 호의가 아니고 통상적인 일이었다.), 승차 전 조수와 기사가 다 약속을 해놓고선 뜬금없는 변심이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내려서 길을 보라고 했다.
길은 폭우로 토사가 밀려내려와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앞선 차들도 하나둘 방향을 틀고 있었다.
"큰 버스가 못 지나가는데 작은 택시를 타고 어떻게 지나가느냐? 다른 길은 없느냐?"
나의 물음에 짐까지 꺼내서 길에 놓아두었던 서림이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다시 타라고 했다.
그리고 차를 돌려 이제까지 길과는 다른 널찍한 이면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5분 정도가 지나 '이대로 가게 되는구나'하고 안심하려는 순간 서림이는 다시 버스가 약속했던 숙소까지 갈 수 없다고 했다.
나로서는 비가 흩날리는 상황에 어딘지도 모르는 낯선 곳에 덜컥 내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왜 자꾸 말을 바꾸냐? 여기서 차 운행이 중단된다는 말이냐? "
"다른 승객들은 다 예정대로 가면서 왜 나만 내리라는 거냐?"
하필 아내와 나만 빼고 다른 승객은 모두 베트남 사람인 듯했다.
말 몇 마디를 주고 받던 서림이는 이번에도 다시 타라고 했다.
나는 이제는 정말 상황이 끝난 것으로 생각하여 무슨 사정이 있는지 모르지만 초행길의 외국인이니 이해해 달라고 화해의 말도 건넸다. 그랬는데 조금 더 가서 다시 해안도로로 내려서는가 싶더니 서림이는 또 내려달라고 했다. 그리곤 여기서 숙소까지 멀지 않으니 택시를 타라는 말을 반복했다.
나는 폭발했다. 얼마 멀지도 않다면 더더구나 내리지 않겠다고 버텼다.
토사로 길이 막혀 차를 돌려 다른 길을 택하면서 숙소에 들리려면 조금 돌아가야 하는 눈치였다.
옆에서 불안해 하는 아내에게 서림이가 이번에도 끝까지 우기면 그냥 내리자고 안심을 시켰다.
그 순간 베트남 운전수와 서림이가 갑자기 회개를(?) 했는지 우리를 숙소까지 데려다 주었다.
가고 보니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왕복 15분 정도의 우회인데 그걸 가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나중에 인터넷의 후기를 찾아보아도 이런 해프닝을 쓴 글은 없었다. 특이한 경우였다.
(혹 이글을 읽는 사람 중에 내가 베트남어를 잘 하는 걸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다. 나는 '신짜오(안녕하세요)'와 '깜언(고맙습니다)' 외에는 베트남 말을 전혀 못한다.
(영어를 전혀 못하는) 베트남인 버스 조수와 대화는 자동번역기의 덕분이었다. 조수는 조수대로, 나는 나대로 휴대폰에 서로의 문자를 열심히 적어 보여주며 대화(논쟁?)를 이어갔던 것이다.
문자로 적으니 감정이 격해지는 걸 방지하는 긍정적인 기능도 있었다.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휴대폰 기술이지만 나로서는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실감하는 경험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숙소인 Bamboo Village Beach Resort에 체크인했을 때 카톡의 진동이 울렸다.
발리로 가족여행을 떠나는 딸아이가 보내준 손자 저하들의 사진이었다.
아내와 사진을 보며 반가움의 탄성을 지르다 이제 비즈니스 좌석을 경험한 손자에게 앞으로 받을 구박을 예감했다. 저하는 이제 여행을 같이 할 때마다 아마 나의 경제적 무능을 꼬집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왜 자리가 좁은 비행기만 타요? 돈도 많이 벌었을 것 같은데."
나의 말에 낄낄거리던 아내가 덧붙였다.
"비즈니스 좌석까지 갈 것도 없이 베트남 버스에서도 구박받는 할아버지인 줄 알면?······ㅋㅋㅋ"
짐을 풀고 아내와 숙소를 산책했다.
초록의 열대 식물이 무성한 뱀부리조트의 정원을 걸어 바다와 나갔다.
비가 온 뒤라 바다 바람이 축축하면서도 시원하게 불어왔다.
저녁식사는 택시를 타고 5분쯤 이동하여 Bờkè Mr.Crab이란 해산물식당에서 했다.
모닝글로리볶음, 맛조개, 오징어튀김과 마늘계란볶음밥에 맥주를 곁들였다.
아내는 하이네켄, 나는 사이공맥주로 했다. 가격은 한국인의 감각으로는 매우 저렴했다.
이날 저녁 우리가 지불한 돈은 503,000 VND, 한화로 2만5천 원 정도였다.
그리고 밤이 짙게 내린 즐거운 '우리집'.
유튜브를 보다가 잠을 청했다. 소란스러운 일도 즐거운 일도 있었던 하루.
늦은 밤 발리에 도착할 손자저하들과 그들은 모시느라 정신없을 딸아이와 사위에게도, 억센 한국놈 만나 자존심이 상했을지도 모를 젊은 베트남 서림이에게도 고단한 하루의 몸을 누이는 편안한 밤이 되길 빌었다.
삐뚤삐뚤
날면서도
꽃송이 찾아 앉는
나비를 보아라
마음아
- 함민복, 「나를 위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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