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손자저하는 바쁘다.
하교해서 집에도 안 들어오고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다가 곧바로 학원에 다녀온다.
그리고나선 또다시 이웃 친구들을 불러내서 잠시 놀다가 태권도를 배우러 간다.
다시 돌아와선 저녁을 먹고 지치지도 않고 좋아하는 축구를 하러 간다.
저하의 친구들 사정도 비슷하다. 짧은 틈새를 이용해 집중해서 노는 것이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도 자라는 아이들도 힘든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하굣길 마중과 학원 배웅길에 얼굴을 본다.
놀이터에서는 나 혼자서 일방적으로 지켜볼 뿐이고.
"이런! 손자 보러 왔는데 얼굴도 제대로 못 보네."
그렇게 말하면 걷다가도 고개를 내 쪽으로 휙 돌려 힐끗 눈을 마주치곤 웃는다.
"이제 봤으니깐 됐지요?"
둘째저하의 목욕을 시키는 건 즐거운 놀이였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나와 목욕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목욕은 나중에 아빠와 하겠다고 나하고는 그냥 계속 놀자고 한다.
소방차와 경찰자, 구급차가 번갈아가며 등장하는 '출동놀이'를 지겨워하지도 않고 계속 반복한다.
"책을 읽을까?" 하고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하면 대번에 "아니요."하고 고개를 젓는다.
그런데 헤어질 시간이 되면 달라진다.
싫다던 목욕을 같이 하자고 하거나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책이 재미있다고 읽어달라고 한다.
갑자기 어린이집에서 만든 물건을 들고 나와 신기하다는 듯 설명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엔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속내를 드러낸다.
"할아버지가 자고 가면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 브레히트,「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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