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멧돼지 난동' 이후 일주일이 지났다.
만약에 대비해서 송년회도 여의도 근처에서 하자는 말이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는 시간이었다.
연말의 작은 모임들과 손자저하들 만나는 일상 틈틈이 촛불집회에 참석하며 보냈다.
일상 속 촛불이고 촛불 속 일상이다. '난동'이 없었더라도 어차피 두 가지는 하나이지만.
평소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과 잠시 만나 한해 동안의 수고로웠던 이야기를 주고받는 편안한 시간은 어떤 날에도 포기할 수 없지 않은가.
손자저하들과 만나는 일은 더욱 그렇다.
내겐 모든 일에 앞서는 최우선의 선택이자 의무이고 가치이다.
엄청난 촛불인파를 보도하는 사진과 영상 속 어디엔가 아내와 나도 스쳐 지나갔을 터이지만 드넓은 해변의 모래알 하나처럼 보이지 않는다. 시인 김남주는 '모래알 하나로 적의 성벽에/입히는 상처 그런 일 작은 일에/자기의 모든 것을 던지는 사람'이 되라고 했다.
시인은 또 '낡은 것을 새 것으로 대체하기 위해 사회적인 실천을 할 때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눈에 띄더라도 누구 하나 알아주지도 않는 일을 꾸준히 하라'고, 변화는 '밤하늘에 화려하게 피어나는 불꽃놀이처럼 그렇게 즐거운 유희'나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극적인 사건'으로 오지도 않는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렇게 아주 하찮은 모래알 하나의 겸손한 마음으로 촛불에 나간다.
국민이 준 권력은 어릴적 소풍 때 수건돌리기가 아니다.
못하겠으면 국민에게 반납해야 한다.
지 마음대로 어떤 놈 뒤에 '수건'을 떨구고 뒷전에 있겠다는 건 진부한 사기극이다. 그걸 제갈공명의 지혜라도 되는 양 덥석 받아 물고 근엄한 척하는 인간들은 도대체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 건가.
이른바 '질서 있는 퇴진'은 난동의 책임을 '질서 있게'지고, 합당한 벌을 '질서 있게' 받는 것뿐이다.
난동의 공범임을 자처한 105마리의 '匊獪狋猿(국회의원)'들과 그 우리(Cage)도 말할 것 없다.
아침에 아내가 친구 모임이 있다고 채비를 했다.
"나는 혼자 등산이라도 갈까?"
혼잣말처럼 했더니 저녁에 촛불에 가려면 체력을 비축해두라는 '계엄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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