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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촛불과 일상

by 장돌뱅이. 2024. 12. 10.

충격적인 '멧돼지 난동' 이후 일주일이 지났다.
만약에 대비해서 송년회도 여의도 근처에서 하자는 말이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는 시간이었다.
연말의 작은 모임들과 손자저하들 만나는 일상 틈틈이 촛불집회에 참석하며 보냈다.
일상 속 촛불이고 촛불 속 일상이다. '난동'이 없었더라도 어차피 두 가지는 하나이지만.

평소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과 잠시 만나 한해 동안의 수고로웠던 이야기를 주고받는 편안한 시간은 어떤 날에도 포기할 수 없지 않은가.

손자저하들과 만나는 일은 더욱 그렇다.
내겐 모든 일에 앞서는 최우선의 선택이자 의무이고 가치이다.

엄청난 촛불인파를 보도하는 사진과 영상 속 어디엔가 아내와 나도 스쳐 지나갔을 터이지만 드넓은 해변의 모래알 하나처럼 보이지 않는다. 시인 김남주는 '모래알 하나로 적의 성벽에/입히는 상처 그런 일 작은 일에/자기의 모든 것을 던지는 사람'이 되라고 했다.

시인은 또 '낡은 것을 새 것으로 대체하기 위해 사회적인 실천을 할 때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눈에 띄더라도 누구 하나 알아주지도 않는 일을 꾸준히 하라'고,  변화는 '밤하늘에 화려하게 피어나는 불꽃놀이처럼 그렇게 즐거운 유희'나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극적인 사건'으로 오지도 않는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렇게  아주 하찮은 모래알 하나의 겸손한 마음으로 촛불에 나간다. 

국민이 준 권력은 어릴적 소풍 때 수건돌리기가 아니다.
못하겠으면 국민에게 반납해야 한다.
지 마음대로 어떤 놈 뒤에 '수건'을 떨구고 뒷전에 있겠다는 건 진부한 사기극이다. 그걸 제갈공명의 지혜라도 되는 양 덥석 받아 물고 근엄한 척하는 인간들은 도대체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 건가.
 
이른바 '질서 있는 퇴진'은 난동의 책임을 '질서 있게'지고, 합당한 벌을 '질서 있게' 받는 것뿐이다.
난동의 공범임을 자처한 105마리의 '匊獪狋猿(국회의원)'들과 그 우리(Cage)도 말할 것 없다.

아침에 아내가 친구 모임이 있다고 채비를 했다.
"나는 혼자 등산이라도 갈까?"
혼잣말처럼 했더니 저녁에 촛불에 가려면 체력을 비축해두라는 '계엄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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