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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빛을 밝혀 한 고개를 넘다

by 장돌뱅이. 2024. 12. 15.

사람들이 집회 장소 근처에 '선결제'를 많이 했다고 한다.
"우리도 어디서 선결제 커피 한 번 마실까?" ,
뉴스를 보며 무심히 말을 하는데 옆에 있던 아내가 한심하다는 투로 지청구를준다.

"쯧쯧, 어른이 되어가지고 선결제를 해주지는 못할 망정 공짜 커피를 마시려고 하다니 · · ·"
"젊은 사람들 먹게 놔둬. 정 먹으려면 가서 당신이나 혼자 먹어. 난 안가"
아내 앞에서 나는 자주 쫀쫀한 사람이 된다.

여의도 집회 장소로 가는 길은 어디나 사람들로 가득했다.
여의도 역에서 내리자 이제부터는 더 이상 지하철이 서지 않는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지하철도, 역에서 나가는 출구도, 출구에서 나와 집회장으로 가는 길도 사람들의 강이었다.

지난주처럼 여의도 공원 근처에서 흐름은 막혔다. 더 이상 국회 쪽으로 갈 수 없었다.
멈춘 곳에 바로 자리를 깔고 앉았다. 그리고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불렀다.  

집회가 끝나고 딸과 손자저하를 만나 식사를 했다.
오마이뉴스에 '수십만 교사가 못 한 일을 대통령 혼자 해냈다'는 제목의 기사가 있다.
'그 X'이 남긴 '퇴행의 유산'을 아이들이 타산지석으로 배운다는 것이다.

"계엄이 뭐예요?"
초등학생인 저하가 여기저기서 들었는지 갑자기 부모에게 물었다. 요즈음 다른 아이들도 자주 물어서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설명을 하느라 부모들이 애를 먹는 질문이라고 한다.
딸아이는 고민 끝에 자료를 모아 파일을 만들고 저하에게 설명을 했다.
아이들도 핸드폰을 들고 다니는 세상이다 보니 요즈음 부모 노릇하기가 만만찮다.
나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대통령이라도 벌을 받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저하에게 설명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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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손자저하를 위해 만든 자료의 일부

아무리 설명했어도 아직 계엄이니 탄핵이니 하는 단어와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어린 저하를 굳이 집회까지 데려올 필요가 있을까 나는 생각했지만 딸아이는 탄핵 가결 시간에 임박하여 아주 잠깐 참석하여 분위기라도 경험시키고 싶어 했다. 

지금 당장은 손자저하가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도 먼 훗날 기억을 더듬으면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게 될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 저하가 살아갈 세상에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겠지만 삶의 방향을 자문해야 하는 어느 순간에 오늘의 기억이 도움을 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또 한 번의 대통령 탄핵을 경험했다.
민주주의를 향한 한 고개를 넘은 것이다.
앞으로도 "빛으로 모이고 될 때까지 모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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