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망나니'의 준동 때문에 정신없는 10여 일이 지났다.
그동안에도 매일 강변과 공원을 산책하였지만 흥분된 상태로 걷기만 해서인지 특별히 나무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12월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제법 무성하게 잎을 달고 있던 나무들이 어느새 잎을 다 떨군 채 이젠 빈 가지로 허공에 균열을 내고 서있다.
빈 나뭇가지에
구름 한 조각 걸렸다 가고
빈 나뭇가지에
하얀 눈 몇 송이 앉았다 가고
빈 나뭇가지에
뾰족뾰족 초록 잎 돋았다 가고
빈 나뭇가지에
다닥다닥 빨간 열매 달렸다 가고
빈 나뭇가지에
한 마리 산새 쉬었다 가고
빈 나뭇가지에
빈 나뭇가지에
- 김구연 , 「빈 나뭇가지에」-
저녁 찬바람 속 빈 나뭇가지를 올려다보며 문득 '늙은 사람은 이미 지닌 것으로 그럭저럭 사는 데 익숙해져 버린 존재'라는 말을 모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해본다.
계절은 계절 아닌 것이 없게 하듯 늙음도 늙음 아닌 게 없게 한다.
걸핏하면 깜빡하는 망각증에, 피부는 탄력을 잃어 늘어지고, 몸 여기저기가 불편함을 알린다.
하지만 지금 지닌 것 혹은 지금 지나는 순간 이상의 욕심을 부리며 살 일은 아니다.
뻔한 이야기가 무슨 신선한 깨달음처럼 와닿는다.
겨울은 겨울나무로 풍성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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