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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베트남과 루앙프라방

2025루앙프라방 1 - 드디어

by 장돌뱅이. 2025. 1. 29.

오래전부터 여행지로 마음에 꼽고 있던 라오스의 루앙프라방!

하노이에서 루앙프라방까지는 비행기로 한 시간 남짓 걸렸다.

서울에서 제주도 가는 시간이라 국내선을 타는 느낌이었다.
승객은 서양인들과 동양인들이 대략 반반씩이었다.
비행기가 하강을 시작하자 승무원이 무언가를 나누어 주었다. 입국신고서였다.
대부분 디지털화되어 최근 몇 년 동안 여행을 하면서는 써본 적이 없는 추억의(?) 종이서류였다.

루앙프라방 국제공항은 우리나라의 지방공항처럼 한적했다. 공항 건물도 아담했다.
이후 만나는 루앙프라방의 건물 중에서는 가장 큰 건물이었지만.

루앙프라방은 수도 비엔티엔에서 북쪽으로 210km  떨어진 메콩 강변에 위치해 있다.
메콩강과 남칸강으로 둘러싸인 반도형 지형으로 원래 옛 란상 왕국의 수도였으나 16세기 들어 왕궁이 비엔티안으로 천도한 후 라오스 제2의 도시로 남게 되었다.
곳곳에 수많은 불교사원이 산재해 있어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4박 5일 동안 묵을 숙소는  번화가인 씨왕웡 Sivangvong로(路)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 있는 아담한 빌라형의 "루앙프라방 펄 호텔 Luang Prabang Pearl Hotel"이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숙소에서 시작해서 메콩강과 왓 시엔통, 남칸강을 돌아오는 산책을 했다. 한 시간 남짓 걸렸다.

이제까지 동남아 여행은 대부분 호캉스 개념이라 수영장은 호텔 선택의 중요 조건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주로 걷기를 할 생각이어서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루앙프라방의 1월은 우리의 가을 날씨처럼 맑고 선선하기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수영복을 챙겨오지도 않았다. 게다가 첫 이틀 동안은 이상기온으로 아침과 밤은 물론 한낮에도 날이 제법 쌀쌀하기까지 해서 수영할 마음은 전혀 나지 않았다.
그래도 베란다에서 책을 읽다가 가끔씩 고개를 들어 수영장을 바라보는 기분은 상쾌했다. 

루앙프라방의 여행기에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대개 루앙프라방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흘러간다는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지만 여행자들의 관심을 모으는 지역은 ('여행자 거리'라고 부르는 씨왕웡을 따라) 끝에서 끝까지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충분할 정도로 작다.
하루이틀 돌아보고 나면 빈둥거리는 것 말고 특별히 할 일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루앙프라방에는 부지런한 사람은 있어도 바쁜 사람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루앙프라방에서의 시간은 메콩강과 같은 속도로 흘러갔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시간의 정의와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을 단조로움,  부유하는 희망, 무정념, 끊임없이 공중을 떠다니는 물방울들, 탑 위의 고요  한 응시, 저녁의 풍부한 색감, 그 속의 침묵, 바람의 흔들림, 마음의 파동,  다시 침묵······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리라. 지붕 위에서 피어오르는 회색  연기, 살아 있는 것들의 이마 위로 내려앉는 노을빛, 햇빛 속에서 말라가는  빨래라고 불러도 상관없으리라. 모든 존재들은 음표처럼 가벼워고, 그들의  움직임은 그림자처럼 조용했다. 그것은 시간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구도의  풍경화였다. 모든 것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적당한 시간의 흐름을 가지고 있었다. 루앙프라방에 머물며 나는 시간의 실체를 감촉할 수 있었다. 생의 한  때를 흘려보내는 것에 대해 기꺼워할 수 있었다.
그것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다.
  
- 최갑수, 『행복이 오지 않으면 만나러 가야지』중에서-

어떤 책에서는 루앙프라방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을 여유가 넘치고 자연친화적이며 심지어 물욕도 없는 수도자처럼 그리기도 했다. 루앙프라방에 대한 그런 식의 '찬사'를 나는 반신반의 하며 읽는다. 
왜냐하면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에 나오는 티베트 고원의 라다크 지역에서 보듯 세상에 오지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게 된 지금의 세상에  '상식적인' 삶의 방식에서 특별히  독립된 '샹그릴라'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1975년에 헬레나가 처음 라다크에 갔을 때까지만 해도 외부와 접촉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라다크 주민들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전통적으로 오래 유지해 온 자연친화적인 생활 방식과 강한 유대감으로 결속된 공동체적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 개발이 '강제'되고 관광객들이 급증하여 국제  화폐경제의 한 부분으로 편입되면서 지역민들 간의 유대감은 개인주의로 느슨해지고  생태학적 균형 또한 흔들리면서 점차 환경 오염도 시작되었다. 루앙프라방이 그와 다르기를 바라지만 너무 다른 세상이기를 바라는 기대 또한 욕심일 것이다.

실제로 주 라오스 한국대사관에서 발행한 "라오스 안전여행" 안내 팸플릿에는 세상 어느 곳을 여행해도 있을 수 있는 절도와 소매치기, 오토바이 이용 날치기,  마약류 등에 대한 주의 사항이  적혀 있다. 또한 루아프라방에서도 여성이 마사지받을 때 남성 마사지 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세상은 비슷하다. 여행은 그 비슷한 속에서 나만의 다름을 선택하고 즐기는 것이다.

이번에 가보니 중국 단체 관광객들이 많았다.
새벽 '딱밧(탁발)'에서부터 야시장까지 중국인들이 대세인 듯했다.
단체관광객들이 외부로 빠져나간 낮동안 시내 카페나 식당에서 그들이 뜸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세상 어디든 중국인 여행객들이 없는 곳은 없지만 루앙프라방이 워낙 좁은 지역이다 보니 그들의 존재감은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2021년 12월 중국 쿤밍에서 라오스 비엔티엔 까지 고속열차 LCR(Lao-China Railway)이 개통되었다.
건설 비용의 70% 이상이 중국 자본이라고 한다. 쿤밍에서 루앙프라방까지는  대략 6∼7 시간 정도로 가까워졌다. 중국 관광객의 대부분은 그 기차를 타고 온 것으로 보였다.
꽝시폭포로 가는 버스 안에서 만난 한 중국인은 상하이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쿤밍으로 와서 다시 기차를 바꿔 타고 루앙프라방에 왔다고 했다.
새롭게 열린 기차가 가져올 루앙프라방의 변화는 어떤 것일까?
원래 '길'이라는 단어는 부패, 타락이라는 단어와 그 어원이 같다고 하는데······.

구글 리뷰에는 일몰 명소로 알려진 푸시산(Phousi Hill) 정상에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로 분위기가 소란스럽다는 불만 투의 글이 올라와 있기도 했다. 단체 관광객인 그들도 푸시산에 올라 노을을 볼 권리가 있는 것이니 정상이 비좁아진 것에  대해 중국인을 탓하는 것은 지나쳐 보였다. 다만 중국인들이 있는 곳이면 말소리가 유난히 시끄러운 건 사실이다.

아내와 나는 해넘이를 포기하고 대신에 해돋이 시간과 한낮에 올랐다. 
두 번 다 사람들이 별로 없어 한가했다. 때로 절정에 대한 욕심을 포기하면 삶이 여유로워진다.
그리고 그 여유로움은 또 다른 절정이기도 하다.

어쨌든 오래 꿈꾸어온 루앙프라방에 드디어 온 것은 그 자체만으로 성취였다.
기념으로 아내와 라오스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했다.
"지금이 루앙프라방 생긴 이래 가장 소란스럽다고 해도 다가올 앞날을 생각하면 바로 지금이 가장 조용한 시간이지 않을까?"
아내와 나는 어디든 언제든 우리가 여행했을 때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읽은 여행기와는 달라졌는지 모르지만 루앙프라방은 여전히(아직은)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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