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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베트남과 루앙프라방

루앙프라방 2 - 탁발

by 장돌뱅이. 2025. 1. 31.

루앙프라방의 아침은 스님들의 탁발(托鉢, 딱밧) 수행으로 시작된다.
방콕에서 그리고 미얀마 양곤에서도 본 적이 있지만 루앙프라방만큼 큰 규모는 아니었다.
새벽 5시 반쯤 사원의 북소리와 함께 탁발 의식은 시작된다.
나이 든 승려들이 앞에 서고 어린 승려가 뒤를 따른다. 사람들은 자신의 집이나 가게 앞에 나와  대나무로 엮어 만든 밥통(팁카오)에 찹쌀밥과 과자 등을 올린다.
승려들은 시주 받은 것의 일부를 다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빈 바구니에 담는다.

일찍 아침이 오는 것이
참파꽃 향기 때문인가 했더니
집집마다 구수하게 번지는
찰밥냄새 때문이었네
맨발에 발우를 든 승려들이 줄지어 걸어오고
발우 사이로 뽀얀 새벽빛이 스밀 때
무릎으로 어둠을 밀어내며
한 줌의 밥을 나누는 순수한 눈빛의 사람들
주황빛 장삼을 벗은 한 쪽 어깨는
태양의 신전인 듯 검게 그을려 있고
신의 표정을 가진 수행자의 얼굴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맑은 눈

긴긴 순례가 끝나도
탁발은 끝이 아니었네
받은 것을 다시 나누며
하루치 이상의 것을 지니지 않는
루앙푸라방의 아침을 여는 탁발

자랑스러운 문명국 사람들은
이 성스러운 나눔에 감탄하면서
처녀의 땅, 루앙푸라방에 삽질을 하네
달달한 참파꽃 향기를 훔쳐가고
메콩강 붉은 물에 배를 띄우면서
반하트앵 마을 대장간의 망치질 소리를
차츰 사라지게 할 것이네

- 윤준경, 「탁발」 -

사람들은 승려들의 진행을 방해해서는 안되고 승려들과 신체 접촉을 해서도 안된다.
시주를 할 때는 승려들보다 낮은 자세로 해야 하고 눈을 마주쳐서도 안된다고 한다.

나는 한 번은 혼자서, 또 한번은 아내와 함께 탁발을 구경했다.
루앙프라방에는 절들이 많고 모든 절에서 탁발 수행을 하기 때문에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지만 처음엔 큰 규모의 행렬을 보기 위해 큰길로 나갔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여행객들이, 특히 대부분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길목마다 자리를 차지한 채로 긴 대열을 이루고 있었다. 가끔씩 한국 단체 관광객들의 모습도 보였다. 시주할 음식(싸이밧)을 파는 상인들도 많았다.

탁발은 종교적 수행의 한 과정이다. 루앙프라방에서 본 탁발은 솔직히 경건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마치 관광상품을 보러 온 것처럼 소란스럽게 떠들면서 스님들의 경로를 막아서는가 하면,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기도 하고, 심지어 플래시를 터뜨리기도 했다. 내가 스님이라면 볼거리가 된 듯한 느낌에 당황스러울 것도 같았다.그런 불편한 모습을 피해 두 번째로 나갔을 때는 큰길 대신 샛길로 들어가 현지인들이 시주하는 모습을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돈 주고 산 시주 물품을 들고 여행 기념 삼아 탁발 행사를 체험하거나 흉내만 내는 순간에도 부처님의 자비가 머물렀으리라 믿고 싶다. '피상적으로'라도 같은 행위를 계속해서 반복하면 언젠가는 종교적 진정성을 깨우칠 수도 있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아마 내가 천주교 냉담자이면서도 '건성으로' 매일 묵주기도와 화살기도를 반복하고 있기에 변명이나 위로 삼아 귀에 담아두었는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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