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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술만 더 먹어보자

한 술만 더 먹어보자 32

by 장돌뱅이. 2025. 3. 14.

동네 재래시장 아내의 단골 어물전에서 산 오징어는 싱싱했다.
크기도 튼실해서 숙회나 잡채, 볶음 등을 하기에 알맞았다.


해물잡채

오징어를 사러 간 이유는 딸아이의 생일 상차림으로 해물잡채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오징어, 새우, 표고버섯, 피망, 파프리카 따위가 들어간 해물잡채를 만드는 법은 앞선 글(
한 술만 더 먹어 보자 7)
에 있다. 아내는 미역국과 전 등 나머지를 맡았다.

출산예정일이 가까워지자 어머니께서 서울에서 내려오셨다. 당시 나는 지방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 딸아이는 세상에 나올 기미가 없었다. 병원에서는 '아직'이라고 했다. 그동안 퇴근 후면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비상대기를 하던 나는 일주일 째 되는 날 저녁에 회사일로 손님과 어쩔 수 없는 저녁 자리를 가졌다. (아내는 회사일이 아니라 술이 고파서였을 것이라고 지금도 의심한다.) 

좀 늦게 집으로 돌아오니 이웃이 조금 전에 병원으로 갔다고 빨리 가보라고 알려주었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라 중간에 내가 집으로 전화를 해보거나 연락 가능한 현 위치를 알려주었어야 했는데 무심했다고 자책하며 급히 병원으로 갔다.

아내는 진통 중이었다. 당시에 남자는 분만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복도에서 대기를 해야 했다. 
아내의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듣기 애처로웠다.
오랜 진통 끝에 새벽녘이 되어서야 딸아이가 태어났다. 

그 꼬물거리던 아이가 세월을 먹고 자라 어느덧 두 사내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아내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이다.


오징어숙회

알아보니 오징어는 전 세게에 400여 종이 분포하며 우리나라 근해에는 80여 종이 서식한다고 한다.
그렇게 종류가 많다니 뜻밖이었다.
그중 내가 아는 것은 갑오징어, 살오징어, 한치(오징어), 꼴뚜기뿐이다.

한치는 화살오징어라고 도 부르며 한국 일본 연안에 산다.
그래서 영어로는 'Far eastern arrow squid'라고 한다.
여름철에 제주도에 가면 싱싱한 한치 물회가 흔한 이유다. 살오징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그 오징어다. 동해가 주산지라고 하지만 바닷물 온도가 변하면서 요즈음은 서해에서도 많이 잡힌다고 한다. 

어물전 주인이 물이 좋다고 자랑한 오징어는 과연 삶아도 그랬다.
싱싱한 식재료에서만 나는 은근한 단맛이 났다. 오래간만에 소맥을 말아 숙회와 함께 마시는 동안 '그 X'도 함께 씹어대며 둘만의 (힘은 없지만) 끈끈한 '탄핵 연대'를 과시해(?) 보기도 했다. 


오징어덮밥

해물잡채를 하고 남은 다리를 모아 매운 오징어볶음을 만들었다.


- 오징어 1마리를 손질하여 껍질을 벗기고 안쪽에 X자로 칼집을 낸 뒤에 먹기 좋게 썬다.
- 새송이버섯 1/2개와 양파 1/4개를 채 썰어 오징어와 함께 양념(설탕 1/2T+고춧가루 1T+간장 1T+생강즙 1/2T+참치액 1/2T+다진 마늘 1/2T+고추장 1T+올리고당 1T+ 후춧가루)에 버무려 20분 정도 재운다.
- 달군 팬에 참기름 1/2T와 식용유 1t를 두르고 다진 마늘과 다진 파 각 1/2T, 채 썬 양파를 넣고 중간불로 볶는다.
- 양념에 재운 오징어와 버섯을 넣고 볶은 후 밥에 올려 송송 썬 풋고추와 작당량의 쪽파를 올린다.


오징어국

오징어를 데친 물에서 향긋한 오징어 향기와 맛이 났다.
버리기 이까워 무와 두부 등을 넣고 국을 끓였다.

붕어 없는 붕어빵처럼 오징어 없는 오징어국이 된 것이다.
국물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내가 내가 끓인 국에 보내는 최대의 찬사는 밥을 말아먹는 것이다.

바로 이 국에 그랬다.


문어숙회와 샐러드

오징어의 여운이 남아 냉장고에 있는 같은 연체류인 문어를 꺼내 숙회와 샐러드로 먹었다.
문어샐러드에는 양배추와 깻잎, 잡채를 만들고 남은 자투리 파프리카 등을 넣었다.
레시피는 '한 술만 더 먹어 보자 9'에 있다.

어느 부자가 TV에 나와서 '돈을 쓰는 재미보다 돈을 버는 재미가 훨씬 더 크다'고 말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아마 내가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두 가지 다 느껴볼 수 없는 재미일 것이다. 월급봉투에 들어오는 돈은 이미 사용처가 정해져 있으니 쓰는 재미를 알 수 없고 당연히 버는 재미도 알 수 없다.
(라고 같이 TV를 보던 아내가 놀렸다.)


생각해 보면 음식도 비슷하다. 먹는 재미만큼 만드는 재미도 크다. 많이 먹어 보고, 많이 해보고, 많이 도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요리란 몸으로 익혀지는 예술'이라고 한다.
내가 만드는 음식에 '예술'이란 표현은 가당찮은 과장이다. 하지만 음식을 가운데 두고 아내와 마주하는 시간엔 종종 그런 과장을 자족(自足)의 다른 표현으로 사용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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