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저하 2호가 감기에 걸렸다.
몸이 아프면 식욕부터 떨어진다.(다행히 손자는 열이 나고 기침을 하면서도 잘 놀고 잘 먹는다.)
어릴 적 딸아이는 감기 기운이 있으면 닭죽이 특효였다.
손자저하도 그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바라며 닭죽을 끓였다.
감기와 상관없는 1호저하도 삼계탕을 무척 좋아해서 두 저하를 위해 안성맞춤인 음식이다.
죽, 이라는 말 속엔
아픈 사람 하나 들어 있다
참 따뜻한 말
죽, 이라는 말 속엔
아픈 사람보다 더 아픈
죽 만드는 또 한 사람 들어 있다
- 문창갑, 「죽」-

감기 돌림.
저하에게서 시작된 감기가 나에게, 다시 딸아이에게로, 사위에게로 옮겨졌다(고 추정한다).
나는 이제 열과 콧물은 그쳤지만 여전히 잔기침은 남아 있고 딸과 사위는 아직 정점을 향하고 있다.
나는 누가 더 저하를 밀착경호를 하며 모셨는가 하는 '충성 서열 순위'라고 공치사를 해보기도 한다.
어른들에게도 이럴 때 죽이 좋다.
부드러운 목 넘김의 죽은 먹는 수고로움을 줄여준다.
아내는 몸이 아플 때 아무것도 넣지 않은 흰 쌀죽을 찾지만 보통 때는 모든 종류의 죽을 좋아한다.
나는 결혼 30년이 되도록 아내가 죽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반대로 싫어하는 줄로 알고 있었다.
부부는 평생을 두고 알아가야 한다지만 이건 내가 생각해도 좀 심했다.
이제 죽은 먹입니다
오래전 아내의 맥을 짚은 알고 지내던 한의사가 "부인에게 죽도 안 먹이십니까?" 하는 '막말'을 들이댔다. 아내의 맥이 너무 약하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농담조로 한 말이었다.나는 아내의 약한
jangdolbange.tistory.com
죽은 계량스푼을 사용하며 양을 재가며 만드는 음식과 달리 남은 밥과 냉장고 속에 남은 김장 김치며 야채 등을 이용해서 쉽게 만들 수 있다. 모든 조리법은 한 가지 '적당하게'다. 적당한 재료를 적당히 썰어 적당한 육수에 넣고 쌀이나 밥과 함께 적당한 점도로 끓여 적당히 간을 하면 된다.




옛날 중국 진(晉) 나라 하증(何曾)이란 사람은 한 끼 식사에 만냥을 쓰면서도 늘 수저 댈만한 음식이 없음을 탓했다고 한다. 몸이 아파서가 아니라 온갖 사치와 호사스러움을 누린 끝에 나온 투정인 것 같다.
그의 그런 정신 건강 상태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몸이건 정신이건 건강하지 못하면 밥맛부터 떨어지는 법이다.
만냥이 아니라 돈으로 치면 만원도 안 들어간 죽이지만 아내와 맛나게 비웠다.
건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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