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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냉담자'의 망상

by 장돌뱅이. 2025. 3. 25.

얼마 전 알고 지내는 수녀님께서 동료 수녀님이 광화문역을 지나다가 극우 개신교 집회 참석자들에게 이유 없는 봉변을 당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다행히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며 우리에게 토요일 "범시민대행진"에 나갈 때 조심하라고 하셨다.

아내와 나도 일이 있어 어쩔 수 없이 그 집회의 언저리를 지나가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이 모일 때 만들어지는 자연스런 신명이나 나지막한 종교적  경건함 대신에 저주와 원망의 아우성만 귀에 가득 들려왔다. 아내와 내겐 마치 광신도들의 집회에 들어온 것처럼 혼이 빠질 것 같았다.
급기야 나는 수녀님께 불경스런 카톡을 보내기도 했다.
"예수님부터 탄핵을 하고 싶네요."

왜 사람들은 그런 자리로 몰려가는 걸까?
정치가 만드는 팍팍한 현실에서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다 보니 종교가 제시하는 축복이니 구원의 논리에 기대게 되는 것일까? 삶의 구체적 '현실 속에서 찾는 하느님 대신에 거꾸로 자기들의 논리를 충족시키는 하느님' 찾는 게 쉬웠을까? 그 허망한 진실에서 얻는 위로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 압구정성당의 그림

대중에게 질서를 부여한다는 생각으로 종교나 미신을 장려했던 로마나 나라를 통치하는 방안의 하나로 종교를 옹호했던『군주론』의 마키아벨리처럼, 우리 정치권도 어쩌면 진실이어서가 아니라 '유용'하기 때문에 '종교 사업'을 키우고 옹호해 온 것은 혹 아닐까? 

오직 사람 하나 없어
무, 인, 도

경전도 사원도 없으니
죄도 없다고

아무도 신을 경배 않으나
신의 뜻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고

- 반칠환,「무인도」-

내게 천주교 교리 수업을 해주신 수녀님은 '한 번 신자는 영원한 신자'라고 했으니 '냉담'이라도 명색이 천주교신자인데, 너무 멀리 왔다 보다.
하루하루가 혼란을 더해가는 상황이다 보니 이런저런 망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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