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이번 여행을 계획할 때 냐짱(나트랑)과 함께 방콕과 치앙마이도 후보지로 놓고 저울질을 했다.
하지만 치앙마이는 봄철이 건기라 비가 내리지 않고 화전민들(혹은 대기업의 계약농들)이 새로운 경작을 위해 기존의 작물과 산림을 태우는 기간이라 공기의 질이 최악으로 떨어지는 시기여서, 방콕은 아내와 내가 좋아하는 여행지지만 봄철 대기 상태가 치앙마이와 비슷하게 나쁘고 최근 몇 년 사이 봄철에만도 이미 여러번 방문했던 터여서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되었다.
여행을 떠나오기 하루 전 미얀마와 태국에서 엄청난 강도의 지진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재난 영화의 한 장면처럼 건물이 쓰러지고 무너져 내렸다.
죽고 다친 사람들의 현황이 매 시간마다 업데이트 되었다.
공포와 슬픔에 잠긴 사람들의 표정이 화면에 클로스업 되었다.
냐짱을 선택한 건 행운이지만 유쾌해질 수 만은 없는 상황이다.
만약 그때 태국을 선택했더라면 위약금을 감수하고라도 여행을 가지 않을 것이라고 아내는 말했다.
우리나라 정치적 재난에, 산불재난 그리고 미증유의 지진으로 뒤숭숭한 분위기에 짐을 꾸렸다.
그래도 공항버스에 오르니 여행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마음 한쪽에 작은 설렘을 불어 넣어 주었다.

나트랑(냐짱)은 작년 9월에 처음 방문을 했다.
그때 느꼈던 호감이 이번 여행의 근거가 되었다.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었다.
아내와 나의 여행이 주로 수영장을 주된 놀이 공간으로 하고 숙소 주변을 걷고 먹는 스타일이라 시원스럽고 아름다운 해변과 이면 도로의 저렴한 가격의 맛집과 카페들이 편리하고 좋았던 것이다.
같은 이유로 앞으로도 더 찾을지 모르겠다.
같은 지역을 여러번 여행할 수는 있지만 똑같은 여행을 두 번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는 모든 순간이 일회성인 것처럼 모든 여행은 '처음'인 것이다.
그런 사실을 자각하는 한 사는 일도 여행도 진부해지지 않는다.
절실해지고 소중해진다.

여행 한두 달전부터 항공과 숙소를 예약하며 시작된 절차적이고 형식적인 여행은 출국심사대를 통과한 후 라운지에서 맥주로 건배를 하고 커피를 마시는 순간부터 실질적인 여행으로 바뀐다. 앞으로 다가올 며칠 동안의 시간이 갑작스러운 보너스로 늘어난 은행 잔고처럼 든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마석도 형사가 악당들을 거침없이 때려 눕히는 영화 <<범죄도시 4>>를 보는 둥 마는 둥 비몽사몽 5시간의 비행 시간 동안 늘여본 끝에 깜란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냐짱에서 30km 정도 떨어져 있어 다시 차로 40분쯤 달려야 한다.
한밤중에서야 숙소에 들어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잘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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