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를 먹지 않거나 국수 문화가 없는 나라가 있을까?
아무 땅에나 푹푹 꽂으면 살아나 꽃을 피우는 개나리처럼 국수는 적응력과 생명력이 뛰어나다.
어느 지역이나 어느 식문화에서도 그 지역에서 가장 구하기 쉬운 재료로 그에 알맞은 조리법이 개발되며 모양과 맛이 다른 다양한 국수가 만들어진다.
특히 베트남은 풍부한 일조량과 강수량으로 다양한 야채와 과일이 자라고, 쌀은 삼모작이 가능하며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1,600km의 긴 해안선에선 온갖 해산물까지 풍족하여 다양한 국수가 탄생할 수밖에 없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거기에 외부에서 들어온 식문화를 자신의 것과 융합시켜 또 다른 음식을 만들어내는 베트남 사람들의 창조성이 더해지며 베트남의 국수 문화는 물론 전체 식문화가 더욱 다양해졌다. 같은 국수라도 저마다 짜 넣는 라임, 느억맘, 스위트 칠리소스, 고추나 마늘 소스, 식초의 양에 따라 다시 한번 맛의 변화가 가능하다.
국수가 없으면 베트남 여행이 얼마나 단조로우랴.
여행 중 혼자서 혹은 아내와 같이 몇 가지 국수를 먹어보았다.
1. Phở Hồng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는 흔한 소고기 쌀국수(퍼보, Phở Bò)다. 그런데 그 방식이 좀 특이하다.
몹시 뜨겁게 달궈진 뚝배기에 맑은 육수가 담겨 나온다.
그리고 얇게 썬 날 소고기와 국수와 파와 야채가 따로 나온다.
이것들은 육수에 담가 익힌 다음 먹는 것이다.
애초부터 그냥 한 그릇에 다 익혀서 나오는 것과 어떤 맛의 차이가 있는지까지는 나의 둔한 입맛으로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이렇게 먹어도 맛이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뚝배기는 국수를 다 먹을 때까지 거의 식지 않았고 육수는 담백하여 물리지 않는 맛이었다.




2. Bún Cá Nguyên Loan
(내가 베트남어 '맹(盲)'이라서 그렇긴 하지만) 베트남어를 제대로 읽기가 힘들다.
대표적으로 'Nha Trang'은 흔히 나트랑으로 읽고 그렇게 통하기도 하지만 원래 발음은 '냐짱'이라고 한다. 주전부리 간식인 Bánh Căn도 반깐으로 읽고 그렇게 소통도 되지만 '바인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느 게 맞는 발음인지 나로서는 알지 못한다.
예전 태국 방콕에 새로운 Suvarnabhumi 공항이 막 생겼을 때 '스바르나부미'라고 말했더니 한 현지인은 킥킥 웃으며 '수완나품'이라고 바로 잡아준 적이 있다.
나라마다 말이 다르고, 말을 제대로 안다는 건 어렵고 그래서 여행은 재미있다.
위 식당 이름도 '분까 응우옌 로안'이라고 읽을 것 같은데 또 틀린 발음이 될지도 몰라 구글에 올라있는 베트남어를 그대로 옮겨 적는다. 베트남어가 6가지의 성조를 가지고 있음을 생각하며 더 복잡해진다.
또 한 가지, 베트남 식당은 식당 이름 대신에 간판에 그 식당의 대표음식을 크게 적어놓는 경우가 있어 이게 식당 이름인지도 확실치 않다. 앞의 Bún Cá는 생선국수를 말한다.
아무튼 이곳에선 튀긴 어묵국수인 Bún chả cá(분짜까)를 먹었다.
아침 산책길에 유독 사람들이 많길래 잠시 지켜보다가 들어가 (말이 통하지 않아) 벽의 사진과 다른 사람들이 먹는 것을 참고하여 손가락으로 주문하였다.
나중에 구글을 검색해 보니 내가 먹은 것이 분짜까인 것 같았다.
Bún(분)은 '퍼'보다 가는 쌀 면을, Chả cá(짜까)는 튀긴 어묵을 말한다고 한다.
생선조각도 들어있었다. 아무튼 천신만고(?) 끝에 먹은 분짜까는 맑은 육수에 어울리는 산뜻한 맛이었다. 다만 식당의 전반적인 환경이 아내와 동행을 추천(강요)할만한 곳은 아니었다.


3. Mì Quảng Nam 127
미꽝은 베트남 중남부 지역인 꽝남(Quảng Nam)과 다낭(Đà Nẵng)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우선 노란색 면이 눈에 들어온다. 강황가루를 넣어서 그렇다.
땅콩, 돼지고기 등도 들어있었다. 새우맛이 나는 과자와 채소를 넣고 휘저어 먹으라고 직원이 가르쳐 주며 칠리소스를 더해주었다. 국물의 양이 적어 거의 비빔국수였다.
구수한 맛이 났다. 특이하고 만족스러웠다.



반죽을 누르면 국수틀에서 국수가 빠져나와
받쳐놓은 끓는 솥으로
가만히 들어가
국수가 익듯,
익은 국수를 커다란 소쿠리째 건져
철썩철썩, 찬물에 담갔다가
건져내듯,
손 큰 내 어머니가 한 손씩 국수를 동그랗게 말아
그릇에 얌전히 앉히고
뜨거운 국물을 붓듯,
고명을 얹듯,
쫄깃쫄깃, 말랑말랑
그 매끄러운 국숫발을
허기진 누군가가
후루룩 빨아들이듯,
이마의 젖은 땀을 문지르고
허, 허 감탄사를 연발하며 국물을 다 들이키고 나서는
빈 그릇을 가만히 내려놓은
검은 손등으로
입가를 닦듯,
살다 갔으면 좋겠다
- 고영민, 「황홀한 국수」-
'여행과 사진 > 베트남과 루앙프라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5 Nha Trang (끝) (0) | 2025.04.10 |
---|---|
2025 Nha Trang 5 (0) | 2025.04.08 |
2025 Nha Trang 4 (0) | 2025.04.07 |
2025 Nha Trang 3 (0) | 2025.04.01 |
2025 Nha Trang 2 (0) | 2025.03.3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