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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YELLOWSTONE 국립공원3 - 도착

by 장돌뱅이. 2012. 10. 24.

같이 아침 식사를 하게 된 미국인 부부가 솔트레이크시티에 오게 된 이유를 물었다.
엘로우스톤을 가려고 왔다고 하자 탄성을 터뜨렸다.
"아! 옐로우스톤!"
자신들도 한번 가보았는데 너무 좋았다고 부러워했다.
그 때문에 우리의 옐로우스톤에 대한 기대치도 기분 좋게 상승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의 주인장과 작별을 했다.
아내는 전통수로 장식된 작은 청색 주머니를 선물했다.
주위의 사람들, 특히 외국인들에게 필요할 때
가볍게 선물을 하기 위해 아내가 일부러 한국에서 가져온 것이다.
주인아줌마는 뷰티풀과 쌩규를 연발하며 좋아했다.
설사 그것이 의례적인 답례의 행동이라고해도
작은 소품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잠깐이지만 훈훈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다시 대여섯 시간의 긴 자동차길이 이어졌다.
유타에서 아이다호를 거쳐 와이오밍으로 들어가는 15번 프리웨이 주변은
이틀 전 지나온 네바다의 팍팍한 사막길과는 전혀 다르게
가슴 시원해지는 초록의 벌판이었다.
그러나 그런 풍경이 서너시간동안 계속 되면서 감각은 자꾸 무뎌지고
끝내는 사막의 항량함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미국이 너무 큰 탓이다.
그 사이에도 우리를 태운 차는 속도를 일정하게 고정시켜 둔 탓에
도화지에 선을 긋 듯 거침없이 내달았다.

마치 서부시대의 어느 번잡한 마을 같은 잭슨 JACKSON 시를 지나
강변에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렸다.
한낮을 조금 지났지만 이제 목적지가 코앞인 터라 여유로웠다.

달리는 차안에서가 아닌 땅에 발을 딛고 서서 보는 풍경은 좀더 진하고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강변의 초록은 더욱 조밀해진 채로 바람에 흔들리고 잔잔하게 누워있는
강물에는 푸른 하늘이 가득하다.
먼 산 위론 흰 구름이 솜처럼 가볍게 떠 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마다 마음도 따라 닮아감을 느낀다.
옹졸하게 마음 한구석에 품고 온 누군가를 향한 증오와 갈등을 풀어놓을 수 있을 것
같고 누군가에게 작은 일까지
용서를 구하고 싶어진다.

 

엘로우스톤을 남쪽으로 들어가려면 역시 국립공원인 그랜드티턴 GRAND TETON을
지나게 되어 있다. 입장료는 그랜드티턴에서 내는 것으로 다시 낼 필요가 없다.
그랜드 티턴은 '거대한 젖가슴'을 의미한다고하지만 실제의 산세는 부드러운 젖가슴의
이미지와는 달리 매우 가파르고 거친 뽀족능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 여름에도 산 정상에 흰 눈을 품은 그랜드티턴은 주위에 펼쳐진 고요하고
맑은 호수와 함께 곳곳에 절경을 품고 있어 아무데서나 카메라셔터를 눌러도
쉽게 그림엽서의 풍경을 담아낼 수 있다. 호수 주변에 야생화가 피면 아름다움은
절정에 달해 미국에서 제작되는 달력 사진으로 가장 많이 쓰이기도 한단다.
미국의 알프스라면 이해가 빠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3일 뒤 좀더 가까이 그랜드티턴을 돌아보기로 하고 이 날은
도로변에서 사진 몇장을 찍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리고 드디어 엘로우스톤.
"산 넘고 물 건너서" 라고 했던가. 실로 먼 길이었다.
공원 입구의 표지판에 아내를 세우고 증명사진을 찍는데
동부에서 차를 몰고 왔다는 중국계 부부가 우리 부부를 찍어주겠다고
함께 서란다. 자신들은 이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옐로우스톤이 어떻드냐고 물으니 아름답다며 자못 감동스러워했다.
뭐가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했더니, "야생곰, 엘크, 버팔로, 나무, 호수, 곷....." 하며
꼽다가 설명할 수 없다고 나중에 알게될 거라고 한다.
나는 작은 일에 크게 감동하는 '수다'를 좋아한다.
월드컵4강이나 8.15해방, 남북정상회담, 뭐 이런 굵직굵직한 것들에만
감동을 한다면 세상살이가 얼마나 삭막해지랴.

 

공원관리소에 신고를 하고 25년만의 캠핑을 위해 텐트를 쳤다.
한국에서부터 지고온 낡은 텐트지만 세우고보니 뿌듯한 보람이 느껴졌다.
원래 캠핑 계획은 없었는데 옐로우스톤내 모든 숙소가 여름철내 만원이었다.
그나마 캠핑 자리마저도 우리가 예약을 한 얼마 뒤에는 만석이 되었다.
갑작스럽게 결행된 캠핑이라 생각날 때마다 필요한 소품들을 사느라
여행 전날 까지 퇴근 뒤면 용품점을 뒤지고 다녀야 했다. 

 

어두워지기 전에 저녁을 먹고 장작을 사다가 불을 피웠다.
점차 사위가 어두워지면서 불빛은 더욱 밝게 타올랐다.
우리는 불빛이 사그러들 때마다 장작을 집어넣었다.

도착 무렵 잠시 빗방울을 뿌리던 하늘엔 구름이 걷히면서
물기를 머금은 듯한 별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밤공기는 차가웠지만 신선했고 바람이 잠든 숲은 조용했다.
아내와 나는 불빛이 다할 때까지 말을 아끼며 자리를 지켰다.
마음을 주고받는데 반드시 큰 목소리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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