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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YELLOWSTONE 국립공원5 - LAKE OVERLOOK TRAIL

by 장돌뱅이. 2012. 10. 24.

엘로우스톤의 전형적인 여름 날씨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머무는 이틀동안 밤이 깊으면 빗줄기가 텐트를 두드렸다.
그러다가 날이 새면 시치미를 떼 듯 하늘은 맑아 있었다.
해맑은 햇살과 공기, 숲이 주는 초록의 질감과 향기.
그속에서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오전을 보냈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의자에 파묻혀 이웃 텐트의 어린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점심을 먹고나서도 한참을 한가롭게 지내다 계획했던 대로 트레일 한 곳을 걷기로 했다.
가까이 있는 WEST THUMB에 있는 LAKE OVERLOOK TRAIL 이었다.
차량으로 10분 이동을 하여 한 시간 남짓 걸으면 되는 코스였다.

오후가 되면서 먼 하늘에 비름 머금은 듯한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옐로우스톤 전체가 해발 3천미터 안팎의 고지이기 때문인지
날씨의 변화가 자못 다채롭다.

트레일은 주차장 바로 옆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몇 발자국을 옮기자 이내 풍경이 바뀌어 산중에라도 들어온 것인 양
숲은 깊은 맛을 내었다. 

 

개인적으로 옐로우스톤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이 간헐천이나 희귀한 야생동물보다도
초록의 풀밭마다 선명하게 돋아난 야생화였다. 갖가지 형태와 색깔의 야생화들이
이곳저곳에서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분위기는 그것이 옐로우스톤 전체라고 해도 좋을만큼
나와 아내의 기억에 진하게 파고 들었다.

한 여름의 짧은 시간동안 종족을 번성이라는 삶의 위업을 숨가쁘게 이뤄내고 있는
작고 옹골진 생명체들 - 아내와 나는 행여 그 여린 것들을 다칠까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길은 굴곡이 심하지는 않았지만 트인 평원과 나무 무성한 숲을 번갈아 보여주며
우리를 이끌었다. 어디나 야생화는 지천이었다.
길을 걸으며 좀더 진하고 순수한 감성으로 그 작은 생명체들이 주는 아름다움과
의미를 삶 속에 담아내고 싶다는 욕심에 잠겨보기도 했다.

높고 깊은 산. 그 속에 외진 곳.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맹렬히 피었다지는
삶의 모습들을 겸허하게 마음 속에 갈무리해 두고 싶었다.
50의 나이를 넘긴 것이 어느덧 몇해 전이던가.
다부지게 살아오지 못한 자책감이 더러 마음을
흐트리며 지나가곤 하지만 그래도
조급해하지 말고 서두르지 말자고 다짐해보면서.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김수영의 시, 「봄 밤」중에서 -

 

 

 

 

 

 

 

 

 

 

 

 

꽃길 끝에 옐로우스톤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정상이 있었다.
어제의 파란색 대신에 무채색의 흐린 하늘을 담은 채로 거대하게 누워있었다.
무엇을 담고 있건 자연 그대로의 풍경은 모두 감동이 된다.

 

 

 

 

 

 

출발점으로 돌아와 다시 차에 오르자 하늘은 오래 참았다는 듯 한바탕 비를 쏟기 시작했다.
잠시 후 빗줄기는 우박으로 변했다. 차 지붕과 본넷에 떨어지는 콩알만한 우박소리가 자못 요란
했다. 우리는 유리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며 비와 우박이 그칠 때까지 주차장에 머물렀다.
차안의 공기는 안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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