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는 동안 아내와 내게 국토는 늘 망망한 대해나 끝없이 샘솟는
샘물처럼, 아름다운 풍경과 앞서간 사람들의 흔적, 그리고 무궁무진의
갖가지 사연들이 넘치는, 가슴 설레는 공간이었다.
거기에 곳곳에서 빼어난 먹거리를 준비하고 있는 ‘고수(高手)’들의
존재는 국토 여행을 더욱 흥미진진하고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1. 태안 "토담집"
내 입맛이 서구화되었다고는 생각하기 힘든데 이상하게
대부분의 한국사람이 좋아하는 간장게장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게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게찜이나 커리와 게를 함께 요리한
태국식 게요리 (뿌팟퐁커리)는 무척 좋아하니까.
그런데도 딸아이와 아내가 이마를 맞대고 밥도둑이라고 칭송해 마지 않는
간장게장이나 양념게장에 나는 별로 젓가락을 대지 않았다.
태안의 토담집을 가기 전까지는.
아내는 내가 게장을 먹지 않는 이유를 나의 게으름에서 찾았다.
한 번의 젓가락질로 그대로 먹는 것이 아니라 껍데기를 발라내는 등의
성가신 작업을 한번 더 해야 하는 노동을 내가 싫어한다는 것이다.
구워먹는 고기보다 수육류를 내가 더 좋아하는 이유와 같은 것이었다.
사실 어릴 적 어머니가 게살을 발라주었을 때는 게장을 먹었던 것도 같다.
그런데 토담집의 게장은 나의 그런 게으름을 벗어던지게 했다.
그 이유는 당연히 토담집의 게장이 주는 맛 때문이다.
짜지도 싱겁지도 안으면서도 전혀 비린내가 없이 개운한 맛을 입안에
남기는 게장의 맛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토담집에서 비롯된 나의 게장 탐식은 그전엔 외면하였던
다른 식당의 게장이나 아내가 직접 만든 게장으로도 이어졌다.
토담집의 게장은 그렇게 나의 유일한 편식을 고쳐준 음식이다.
토담집의 또 다른 장기인 우럭젖국은 태안 지방의 전통음식이다.
말린 우럭을 대파와 두부와 함께 넣고 끓여내는 우럭젖국은
짧짜름하면서도 개운한 국물맛이 게장과도 잘 어울린다.
토담집은 태안군청 가까이 있다.
(전화번호 :041-674-4561)
2. 예산 "삼우갈비"
예산군청 가까이 있는 삼우갈비는양념갈비로 유명하다.
주문을 하면 마당 한쪽에 있는 조리대에서 미리 구워서 나온다.
근처에 있는 소복갈비와 쌍벽을 이룬다.
(전화 : 041-333-6230)
3. 보령 "수정식당"
밴댕이조림으로 유명한 수정식당은 충남 보령시에 있는 작은 식당이다.
처음 밴댕이조림이란 말을 들었을 때 밴댕이도 조려먹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의 외관도 허름한데다가, 조림냄비에 대파와 무, 마늘쫑 등을 붉은 색의
양념장을 넣어 졸여내는 밴댕이조림은 처음엔 시각적으로도 그리 신통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작고 납작한 밴댕이에서 살을 발라내 먹는 것도 어려웠다.
그런데 식당 주인이 알려주는 요령대로 밴댕이 뼈를 젓가락으로 잡고 좌우로 반동을
주니 마치 기계가 발라내 듯 살과 뼈가 분리되었다.
발라낸 밴댕이 살로 싸먹는 상추쌈의 맛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수정식당은 올해로 식당문을 연지 11년째 되었다고 한다.
이제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가지 취재를 올 정도가 되었다고 자랑하는
주인 김정자 할머니의 자부심이 유쾌해 보였다.
속 좁은 사람을 가리켜 흔히 ‘밴댕이’로 부른다.
(아내가 자주 나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충청도 지역에서는 ‘빈뎅이’라고 부른다고 하며 식당 문과 벽에
붙은 차림표에도 그렇게 쓰여 있었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송애’라고 부른다고 하던가?
다양한 이름만큼이나 밴댕이는 회로, 구이로, 젓갈로, 조림으로까지
쓰이는 다용도 먹거리였다.
(전화번호 : 041-936-2341)
4. 증평 "부원정육점"
이곳에서는 보통 부위별로 주문을 하여 먹지 않고 항정상과 갈매기살,
그리고 삼겹살이 함께 나오는 세트 메뉴를 주문하게 된다.
고기를 구워먹고 난 후 밥을 주문하면 솥밥을 바로 지어낸다.
함께 먹는 된장찌개의 맛도 보통이 아니다. 다녀간 사람들의 낙서로
가득한 벽이 이채로운 내부는 동그란 테이블이 대여섯 개 놓여 있어
정겨워 보인다. 돼지고기만이 아니라 소고기도 먹을 수 있다.
소고기의 질도 뛰어난 편이다.
주인 내외의 충청도다운 넉넉한 인정과 친절도 식당을 찾는 즐거움을 더하게 한다.
좋은 식당은 친절도 남다르다는 말이 사실임을 알려주는 식당이다.
아내와 나는 중부고속도로를 지나는 길이면 일부러 잠시 증평에서 빠져나가 이 집을 찾는다.
(전화 : 043-8383474)
5. 공주 "새이학가든"
원래는 이름이 ‘이학가든’이었는데 건물을 새로 지어 ‘새이학가든’이 되었다.
50년대 초에 문을 열었다고 하니 역사만도 반세기에 이르는 식당이다.
식당 건물에서 해묵은 연륜이 느껴지지 않는 점이 이쉽긴 하지만
이 식당의 국밥은 여러 명의 대통령 후보들이 유세차 공주를 들렸다가
먹고 갈 정도라고 한다.
옛 백제의 흔적을 찾아 공주를 찾는 길에 추천하고 싶은 식당이다.
공산성과 가까운 곳에 있다.
(전화번호 : 041-854-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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