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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잘 먹고 잘 살자12 - 기억 속의 울산 맛집

by 장돌뱅이. 2012. 11. 10.

<장돌뱅이 취업기(就業記)>

장돌뱅이씨도 대단하네요.”
서류를 뒤척이던 면접관이 말했다. 성적증명서를 보고 하는 말이 분명했다.
나의 의견을 묻는 질문은 아니었지만 가만히 있기도 뭐했다.

“예. 뭐 그렇게 되었습니다.”
겸연쩍은 태도로 말을 하면서 내가 좀 비굴해지는 것도 같았다.
그리고 ‘젠장! 이곳도 떨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말하는 ‘대단’이라는 것이
역설적인 ‘대단’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군대를 다녀오자 제2차 오일쇼크의 여파로
취업의 문은 좁아져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온통 ‘디’ 밭에 ‘씨’를 뿌린 위에
몇 벌의 ‘쌍권총’까지 세워 놓은
나의 성적으로는 어느 곳이건 들어가기 쉽지 않은
형편이었다.
벌써 몇 곳에서 낙방을 한 터라 한번 더 떨어지는 것이 새삼스레 충격적이지는
않았지만
또 다른 취업을 위해 내세울 것도 없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써야한다는 사실이
곤욕스럽게 느껴졌다.

“보시다시피 전공은 별로 아는 게 없습니다. 물어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묻지도 않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체념을 하자 면접에 대해 담담해진 탓도 있었다.
면접에서
해야 될 말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기왕 떨어질 거라면 솔직히 빨리 끝내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서너 명의 면접관 중에서 가장 윗사람으로 보이는 가운데에 있는 사람은
내 의도와
다르게 반응했다.

“아, 그래도 면접인데 전공을 안 물을 수야 있겠나요?”
“아마 제가 모를 겁니다. 별 자신이 없네요.”
어떻게 보면 어깃장 놓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나의 태도에도 시종 미소를 잃지 않던
그는 서류를 내려놓고 만년필 뚜껑을 닫으며 내게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장돌뱅이씨가 제일 자신 있는 게 뭔가? 그걸 한번 말해보시지요.”
“???”

‘자신 있는 것? 뭐가 있지?’
평소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터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내게 그럴만한 게 있는 걸까?
막걸리에 밥 말아먹기, 김치 한 조각으로 사홉들이
소주마시기,
한 시간에 생맥주 만CC 마시기,
이박삼일로 잠 안자고 술마시기......
치기(稚氣)어린 술 마시기 이외에 별 내세울 게 없어보였다.

그가 면접을 접으며 형식적으로 한마디 던진 질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갑자기
답변에 갈증을 느꼈고 조금은 조급해졌다. 그런 내가 터무니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설혹 합격 여부와는 상관이 없다고 하더라도 나에 대해 진지하게 한마디쯤은 하고 싶었다.
근데 그게 마땅한 게 없었다. 자신있는 거라니?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그가 친절하게도 나의 답변의 폭을 넓혀 주었다.
“자신 있는 게 아니더라도 뭐 남에게 자랑해도 될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말하셔도 됩니다.”

순간 머릿속이 반짝했다.
"자신 있는 거라면 잘 모르겠지만 자랑거리라면 당연 제 애인입니다.”

나의 답변에 면접관 석에서 작은 웃음이 일었다.
“애인?... 그러면 장돌뱅이씨의 애인 자랑을 해보시지요.”

나는 꺼릴 것 없이 (지금의 아내인) 애인과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같은 모임에서
만나며 언제부턴가 혼자서 마음속으로만 애 끓이던 시간이나
서툰 고백으로 가까워진
이후의 데이트 등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전공(?)을
‘논리정연’하게 이야기를 했다. 면접관은 나의 말 사이사이에 오!라거나 아하! 등의
짧은 추임새를 넣어주었다.
그리고 나와는 달리 그녀는 전공에 성실했으며
지금은 강원도에서 중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는 말로 마감을 했다.

면접장을 나오며 이 회사에 대한 미련을 접기로 했다.
기상천외한 면접이 재미는 있었지만
그것이 직원을 채용하는 정상적인 과정이라고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렇다고 놀림을 받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면접관도 나도 채용과 면접이라는 다소
딱딱한 업무시간 중에 잠시 그런 부담을 털고
잠시 쉬어간 것이라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뒤 어느 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늦은 귀가를 한 나에게 어머니는 뜻밖의
소식을 전해주셨다.
“OO라는 회사에서 2차 면접을 보러오라고 전화가 왔었다. 전화를 달라더라.”

2차 면접은 회사의 대표이사가 배석한 자리라고 했다.
한 가운데 앉은 나이 지긋한 신사가 그 사람인 것 같았다.
1차 때 한 가운데 앉아 면접을 주도하던 낯익은 면접관은 한 자리 옆에 앉아
있었다.
대화는 주로 앞줄의 사람들에서 나왔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뒤쪽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 2차 면접은 당락결정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촛점이 임원들과 첫 상견례를 하는 의미라고 했다.)

내 차례가 돌아와 인사와 이름을 밝히고 자리에 앉자 그가 대표이사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나도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다분히 과장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장돌뱅이씨는 전공은 잘 모른다 하고 애인이 훌륭한 분이랍니다.”
그 말을 들은 대표이사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장돌뱅이씨의 훌륭하시다는 애인 이야기 한번 들어 볼까요”

얼마 뒤 나는 입사교육을 받았고 그 회사의 서울 본사 해외영업부에 배치되었다.
생전 매지 않던 넥타이를 매고 하루 종일 책상머리에 앉아 해외 거래처와 교신한
텔렉스(TELEX) 철을 보며(그 당시는 팩스나 이메일이 없었다.)
업무를 파악하는 것이 일이었다. 지루했다.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닌 것 같았다.
(전공에 대해 아는 것이 쥐뿔도 없었지만) 그래도 공대를 나왔으니
공장으로
가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1차 면접을 주관했던 사람은 알고보니 내가 소속한 부서의 본부장이었다.
갓 입사한 초짜가 쉽게 만날 수 없는 까마득히 높은 자리의 상관이었다.
하지만 기상천외한 면접을 치뤄서인지 나를 기억해 주었다.
어느 날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가 '일이 할만 하냐?고 면접 때완 달리 반말로 물었을 때
나는 작심을 하고 공장에서
근무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영업은 회사의 꽃이라며 진심어린 만류에 나섰다.
자신도 사실 공대 출신이라며 해외영업이란 업무는 일을 하면서 배우면 되지
학부의 전공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나를 설득했다.
'게다가 당신의 전공 실력은 내가 잘 알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며 나의 약점을 찌르기도 했다.
그 뒤 수 차례의
면담이 이어졌다. 그래도 내가
변하지 않자 그는 내게 마지막으로 보름이란 시간을 더 주었다.

“일생이 달린 문제일 수도 있으니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고 2주 뒤에도 같은 생각이면 내게 올 것!”

2주가 되었다. 나는 변함없는 생각을 말했다. 그의 답변이 상상 이상으로 시원스러웠다.
“정 그렇다면 지금부터 10일의 특별휴가를 줄 터이니 애인과 친구들과 송별회를 하고,
10일 뒤
낮 열두시에 울산 공장의 인사과로 찾아가 대기 할 것.
그동안 내가 당신에게 필요한 조치를
취해 놓을 테니까.”

나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전 국토의 고향화'를 위한 결단이라고
흰소리를 해대며 향후 18년 동안 이어질 울산 생활의 시작을 알렸다.

(33년의 직장 생활중 뒷부분 23년은 그렇게 벗어나고자 했던 해외영업의
장돌뱅이질로 보냈으니
팔자나 운명이라는 것도 있는 거 같다)

<아내와 나의 울산 맛집>
18년 동안 울산에 살면서 자연스레 몇 곳의 단골식당이 생기게 되었다.
올해(2007) 초부터 다시 울산에 일이 있어 자주 방문하게 되었다.
아내가 함께 한 날에는 일을 마치고 그런 옛집들을 일삼아 찾아 다녔다.
기억을 더듬어
걸어가는 식당이 있는 골목길에는 오붓한 즐거움이 깔려 있었다.
더러 아내와 나를
기억해주는 주인이나 종업원들을 만날 때는 그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울산을 떠나 서울로 온 최근 7년 동안 울산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울산에도 특히 태화강
남쪽의 ‘강남’의 변화는 놀라운 것이었다.
식당 역시 무수하게 새로 지어졌다.  때문에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더욱 아내와 내가 알고 있는 식당이
울산을 대표하는 맛집이라
내세울 수 없게 되었다.
아내와 나의 다른 국토여행이 그렇듯 울산의 옛 맛집 순례도
다만 아내와
나의 추억을 확인하고 만드는 과정일 뿐이다.
글로 옮김으로써 다른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무엇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지만.


1. 봉계 중앙암소숯불고기
휴일날 승용차로 봉계에 다가서면 고기 굽는 냄새가 먼저 느껴진다.
마을의 집들이
온통 한우고기를 숯불에 구워먹는 식당들인 탓이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4-50곳은
족히 될 것 같은 이름 하여 봉계숯불구이 단지다.

예전에 봉계 장터에 있는 식육점겸 식당에서 냉동을 하지 않은 생고기를 썰어
막소금을 뿌려가며 숯불에 구워먹기 시작했는데 그 신선함과 맛이 입소문을 타면서
오늘날처럼 변모하게 되었다고 한다. 장터는 문을 닫은 지 오래 되었다.  

 

중앙암소숯불구이는 봉계에서 우리 가족이 가본 오직 한 곳이다.
때문에 다른 곳과
비교는 할 수 없다. 원래 장터 옆 도로변에 있는 낡은 건물이었는데
이번에 가보니
대로변으로 건물을 크고 깔끔하게 지어 옮겼다.
손님이 많았다는 증거이겠다.
주인아주머니는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7년 만에 찾아온 우리 부부를 희미하게나마
기억해 주었다.  

 

횡성한우나 서울 강남의 박대감, 새벽집, 뱀부하우스 등을 경험한 아내는
그보다 중앙암소숯불구이를 좀 더 우위로 꼽았다. 저렴한 가격 때문만은 아니었다.
선뜻 우열을 가릴 수는 없었지만 나 역시 미세한 그물망 무늬의 마블링을 키워
부드러움만을 강조한 요즈음의 한우 대신 질깃한 씹는 맛이 남아 있는
이곳의
한우에 매력이 느껴진 것도 사실이었다.
“사람이 여럿이라면 차비를 들여 다녀가도 아깝지 않은 곳!” 아내의 표현이다.
(전화번호 : 052-262-9028)


2. 동해농장식당

울산 시내에서 동해바다(정자동) 쪽으로 가려면 예전에는 꼬불꼬불 고개를
넘어가야했지만
지금은 시원스레 터널이 뚫렸다.
동해농장식당은 터널 진입하기 500미터쯤 전 길 왼쪽에
있다. 
 

이곳은 멧돼지고기 구이로 유명하다.
아내와 나는 달콤하면서도 고소한 멧돼지양념갈비를
좋아한다.
갈비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고 굽는데 시간이 좀 걸리므로 예약을 하고 가는 것이
좋다.
식당은 멧돼지를 키우는 자체 농장을 가지고 있다. 
 

 

이곳의 또 한 가지 권장 메뉴는 닭백숙이다.
사실 아내와 나는 백숙보다 백숙 뒤에 나오는
죽을 더 쳐주는 편이지만
백숙의 맛도 남다르다. 닭 역시 자체 농장에서 키워 부드러운
육질이 그만이다.
아내와 나를 기억해주는 10년 장기근속 중인 여직원의 환영과 살가움에
더욱 즐거운 곳이었다.
(전화번호 : 052-288-4545)


3. 원지원

울산공항 가까이 있는 식당이다.
국밥과 석쇠불고기, 수육, 파전 등이 주요 메뉴이다.
 

 

 

 

어느 음식을 주문해도 수준급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아내와 내가 갈 경우 석쇠 불고기에
하나에 국밥 두 그릇이 정량이다.
(전화번호 : 052-295 -0467)
 


4. 솥밥식당

외모만 보고 어떤 사람의 인간 됨됨이를 섣불리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어릴 적부터 반복하여 배워왔다. 너무 지극히 당연하고 쉽기 때문인지
우리는 곧잘
그 교훈을 망각하는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솥밥식당에서도 그 교훈은 유효하다.
허름하고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는 식당의 입구에 대한 불안한 첫 인상은
이곳의 음식을 대하는 순간 사라진다. 몇 가지 음식이 메뉴판에 붙어있지만
아내와 내가 솥밥식당을 찾는 이유는 갈치조림이나 구이 때문이다.
 

 

 

두 가지 다 싱싱한 국산 갈치의 제대로 된 맛을 보여준다.
감자와 우거지가 섞인 조림은
국물의 양이 많으나 맛이 진하고,
갈치의 가운데 토막만 사용하는 구이는 두툼하고
실하다.
갈치요리뿐만이 아니라 같이 나오는 우거지찌게나 밑반찬들
역시 만만찮은 맛을
보여준다. 중구 옥교동 (옛) 중앙호텔 옆 골목 안쪽에 있다.
(전화번호 : 052-211-2549)
 


5. 원조집

무거동 삼호 지하차도 입구 울산 무거동 태화강변에 있는 이 집은 원래 해장국으로
유명하다. 선지와 콩나물을 넣고 뚝배기에 끓여 나오는 해장국은 시원한 맛이
속풀이에
그만이다. 

 

 

그러나 울산에 사는 동안 아내와 나는 해장국이 아니라 곱창구이를 먹으러
이 집에 갔다.
서울에도 곱창구이로 유명한 여러 곳이 있지만 이 집보다
확실한 비교우위를 지닌 곳을
아내와 나는 알지 못한다.

곱창구이라는 말만 들어도 인상을 찌푸리던 아내가 처음
곱창의 맛을 인정하게 된 곳도 이 식당에서였다.
(전화번호 : 052-277-1453)    


6. 함양집

4대째 내려온 비빔밥집이다. 그러나 묵채와 파전도 이 집의 주요 메뉴이다.
비빔밥은 채를 썬 콩나물, 무나물 등의 야채에 육회가 고명으로 얹어 나온다.
육회를 싫어하는 사람은 별도로 요청을 하면 익혀서 내준다. 

 

파와 미나리, 소고기와 조개에 계란이 푸짐하게 들어간 파전은 간장 소스가
아닌
이 집만의 소스에 찍어 먹는다.

묵채는 비빔밥을 먹기 전에 전식으로 먹곤 하는데
깨소금과 김이 들어간 국물 맛이 고소하기 그지없다.
원래는 시청 맞은 편 신정동 한
곳에만 있었지만
우리가 서울로 올라온 사이에 달동에도 분점을 내었다.
(신정동 본점 : 052-275-6947 / 달동 분점 : 260-9060) 


7. 남해꽃게탕

이곳은 식당 이름과는 달리 쭈꾸미구이로 유명한 집이다.
양념구이와 소금구이가 있다.
주문을 하면 1차로 초벌구이를 해서 나온다.

함양집처럼 시청 맞은 편에 있었는데
울산의 ‘강남’인 삼산동으로 확장하여 옮겼다.
그만큼 사람들 사이에 인기가 있었다는
증거가 되겠다.
 

 

 

쭈꾸미를 먹고 나면 밥과 콩나물국이 나오는데,
아내와 나는 이 집의 콩나물국을 쭈꾸미
구이만큼이나 좋아한다.
콩나물향이 은근히 배어있는 국물은 담백하고 시원하다.

주인아주머니는 딸아이를 어린 초등학생의 모습으로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삼산동 현대백화점 주차장 뒤쪽에 있다.
(전화번호 : 052-276-0576)


8. 정일회집

울산에서 온산을 지나 진하해수욕장으로 가는 길목의
회야강변에 위치한 정일횟집은
직접 주인 소유의 배로 잡아온
자연산회만 내놓는 믿을 만한 횟집이다.

 

아내와 내가 즐겨하는 것은 가자미로 싱싱한 생선에서만 느낄 수 있는
달작지근하면서도
찰진 육질이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다.

회에 일가견이 있다는 울산 친구의 말에 의하면 같은 생선이라도
회를
뜨는 방식에 따라 맛이 차이가 난다고 하는데,
그 때문인지 무엇때문인지 이 집의 회맛은 주변과 다른
차별성이 느껴진다.
밑반찬이 많이 나오지 않지만 식사 때 나오는 생선튀김이나 매운탕
등도
모두 자연산 재료를 사용하여 입에 붙는다.
(전화번호 : 052-238-4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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