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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잘 먹고 잘 살자9 - 전남(1)

by 장돌뱅이. 2012. 11. 10.

1. 해남 "용궁해물탕"

남도지방을 여행할 때 행복해지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음식 때문이다.
구태여 책자나 인터넷을 뒤져 맛있는 식당의 정보를 구하지 않고
아무 식당문이나 열고 들어가더라도 최소한 본전 생각은 나지 않을
정도로 남도는 맛이 보편화한 고장이다.

강진, 해남 일대의 명동식당과 해태식당, 청자골종가집과
천일식당의 한정식이나 설성식당과 수인관의 돼지불고기백반 등이야
푸짐하고 맛나기로 이미 알려진 터이지만 해물탕은 어떨까?
남도 고유의 음식이랄 수도 없고 어느 지방에서건 만날 수 있는
‘전국구음식’인데다 조리 방법도 시쳇말로 “그까이꺼 뭐 해산물
몇 가지에 고춧가루와 마늘 등의 양념을 풀어 대충 끓여내면 될 것”
같으니 아무리 남도의 솜씨인들 특별하게 만들 수 없는 음식 아닐까?

그러나 해남읍에 있는 용궁해물탕(061-5362860)에서 맛을 본 해물탕은
역시 음식은 남도라는 생각을 들게 하였다. 꽃게와 새우, 소라, 바지락
조개, 대합, 한치알과 세발 낙지 등 싱싱한 해물이 푸짐하게 들어간
해물탕은 다른 곳의 해물탕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맛을 냈다.
어패류에서 우러나온 뜨거운 국물은 시원하고 구수한 맛으로
입안을 감미롭게 했다.

주인인 황점이씨의 말에 따르면 콩나물 하나에서부터 재료의 선택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덕이라고 했다. 해물도 가장 맛이 있는 시기를
가려서 넣으며 육수와 양념은 종업원들도 모르는 주인장만의 비법으로
직접 만든다고 한다. 1998년도 남도 음식 축제에서 쟁쟁한 다른 음식들과
경쟁하여 대상을 수상한 이유가 거기 있을 것이다. 언제든 해남을 다녀올
기회가 있다면 그리고 일대의 다른 음식들을 이미 경험했다면 한번쯤
일정 속에 넣어둘만한 식당이다. 
 


2. 굴목이재 "조계산보리밥집"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이어지는 굴목이재는 언제 가도 아름다운 길이다.
고개 정상부에 있는 보리밥집이 있다. 선암사에서 출발하면 조계산보리밥집은
굴목이재 정상을 살짝 넘어 송광사 쪽으로 치우쳐 있다. 경사진 고개를 넘어
오느라 배가 헛헛해질 쯤이면 만나게 된다.

널찍한 평상에 앉아 쟁반에 담아
나온 보리밥과 나물들을 큰 대접에 넣고 고추장,
참기름과 함께 비벼 먹는 맛이
더없이 좋다. 산행에 이어진 식사라 그 맛이 더할 것이다.
거기에 동동주 한잔을
걸치면 산 아래에서 묻어온 골치 아픈 세상살이도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아진다. 보양식이란 철 맞춰 찾아온 예쁜 청둥오리를 밀렵하고 겨울잠 자는
죄없는 파충류나 들쑤시는 것이 아닌 이런 음식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전화번호 : 061-754-3756)

 


3. 광주 "팔도정"

나는 아내와 여행길에 이름난 음식점을 찾아 어느 정도 먼길을 에돌아가는
것쯤은 기꺼이 감수하는 편이지만 스스로를 미식가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딸아이는 전혀 믿지 않지만, 그리고 절대 아내에 대한 아부도 아니지만
내게 가장 맛있는 음식을 꼽으라면 음식의 종류에 상관없이 집에서 먹는
음식이라고 말한다. 밖에서는 어떤 산해진미를 먹는다 하더라도 집에서 먹
는 느긋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주변을 의식할 필요 없이
사랑하는 식구들과 마음껏 떠들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음식도 평범한
일상 같은 것이어서 구태여 어떤 높은 기대치를 갖거나 주목하지 않아도 되는,
필요한 것이 식구의 얼굴과 대화뿐인 시간 - 어쩌면 그런 것이야말로 물 말은
밥에 묵은 김치를 먹거나 멸치나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먹어도 가장 완벽한
식사가 아닐까.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식당은 그런 감정과 가장 가까운 분위기와 맛을 내는
식당일지도 모르겠다. 광주광역시의 팔도정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렇다.
사실 이 집을 내가 좋아한다지만 찾는 사람에 따라 다소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나는 하고 있다. 이 집에서 낸다는 굴비구이는 우리가 익히 아는
음식이고 같이 나오는 음식도 특별하달 것 없는 남도식 반찬이지만,
바로 그 평범한 가정 음식 같다는 점이 이 집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거기에 확실한 영광굴비라는 신뢰감이 더해지기에 이 식당은 편안함을 준다.
(전화번호 : 062-222-8889)


4. 영광 "일번지"

 “영광굴비”의 존재가 아직도 유효하냐? 는 논쟁이 있다. 음력 3월 중순 추자도와
흑산도 해역을 거쳐 서해안으로 올라온 참조기 떼는 영광의 칠산 앞바다에 이를
때 몸에 윤기가 흐르며 알이 빼곡해진다고 한다.

이를 잡아서 법성포에서 말린 조기만을 영광굴비라고 한다면 오늘의 영광굴비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원양어업의 발달로 회유지점인
먼 동지나해에서부터 조기를 잡아버려 법성포 앞바다에 예전만큼 조기잡이배의
노랫소리가 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시중에 나도는 수많은 영광굴비가 대부분
중국산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아내와 나는 아직도 영광굴비의 존재가 유효하다고 믿는다. 법성포에
무수한 영광굴비집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조기의 건조에 적합한
해풍과 습도를 지닌 법성포만의 기후조건에 염장에서부터 타 지역과는 다른
이곳만의 독특한 전통 기법이 더해져서 탄생하는 것이 영광굴비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맛에 관한한 우리나라를 대표한다고 해도 좋을
전라도의 ‘손맛’ 아닌가.

법성포 포구에 있는 식당 일번지는 굴비정식으로 유명하다.
상에는 굴비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서대, 홍어, 갈치, 병어, 가오리찜,
간장게장 등이 더불어 나온다. 대부분의 전라도 음식이 그렇듯 ‘주연’보다
‘조연급’ 음식이 더 입맛을 당길 정도이다.

좀 투박한 서비스에 조금 실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기왕에 한상 그득한
음식을 먹어치워야 하니 느긋한 마음으로 도시적 예민함을 덮어두어도 좋을 것이다.
(전화번호:061-356-2268)


5. 보성 벌교 "국일식당"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주 무대로 알려진 벌교는 작은 읍이다.
소설에서 그려진 소용돌이의 역사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여느 지방 소읍과
특별히 다를 것 없는 평범한 곳이다. 그러나 소설이 아니어도 이곳엔 특별한
것이 있다. 바로 꼬막이다. 읍내 국일식당(061-857-0588)은 꼬막음식으로
유명하다.

꼬막이야 그냥 삶아서 까먹는 맛이 최고지만
(물론 익은 부분과 덜 익은 부분이
공존하도록 데치듯 삶아내는 것이 비결이다.) 이 집에선 꼬막무침, 꼬막전,
꼬막된장찌개 등을 내놓는다.

식사 시간이 한참 지난 뒤 쉴만한 시간에
아내와 둘이서 들어갔음에도 전혀
귀찮아하는 기색없 이 반가운 목소리로 받아주는 아줌마의 남도사투리도 듣기
좋았다. 그리고 음식들을 내오기 시작했다. 그 음식들은 대부분 미리 만들어 둔
것이 아니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잡기에 힘에 부치는 듯 식당 외관은
다소 허름하지만 아주머니의 질박한 인심과 향토색 짙은 음식 솜씨가 오히려
그것을 정겹게 했다. 
 

 


6. 보성 벌교 "제일회관"

원조를 알기 힘든 음식들이 있다. 포천이동갈비, 장충동족발, 천서리막국수,
신당동떡복기 등등. 벌교읍내 꼬막정식도 그런 것 같다. 작은 읍내에 있는
여러 식당에서 꼬막정식이란 음식을 내고 있다. 언젠가 아내와 내가 찾아갔던
식당 "제일회관"의 여주인은 자신이 제일 먼저 시작한 음식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꼬막정식은 "간간, 쫄깃쫄깃, 알큰, 배릿"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삶은 꼬막에서부터
달걀을 입혀 부쳐내는 꼬막전, 여러 양념과 야채와 함께 무쳐내는 꼬막무침,
된장과 끓여내는 국 등이 다른 밑반찬과 나오는 음식을 말한다. 보통은 밥과
꼬막무침을 참기름과 함께 넣고 비벼먹는다.

음식을 먹기 전 아내와 나는 별도로 삶은 꼬막을 싸달라고 했다.
겨울이 오면 참꼬막에 소주 한잔을 약속했던 - 그러나 그 해 여름 홀연히 세상을
떠나버린 - 친구에게 가기 위해서였다.

그가 누워 있는, 남도의 바다를 굽어보는 얕은 언덕에 삶은 꼬막을 놓을 때의
그 황망하던 기억 ......
그래도 그를 만나러 올 겨울에도 먼 길을 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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