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연말 나는 아내와 딸아이와 함께 미 서부를 여행하였다.
그 때 라스베가스에 묵으면서 당일치기로 데쓰벨리를 다녀온 적이 있다.
이른 아침에 출발하여 북에서부터 남쪽을 향하여 내려오며
우베헤베 분화구 UBEHEBE CRATER 나 모래언덕 SAND DUNE 등을
구경하였다. 배드워터에 도착하자 해가 저물어 더 이상의 일정 진행이 불가하였다.
라스베가스로 돌아가는 길,
차의 연료를 확인하였다. 아슬아슬하게 라스베가스까지 갈 것 같았다.
그래도 안전하게 연료를 보충하라는 아내의 말을 ‘넉넉하다’는 말로 누르고 차를 몰았다.
가는 도중에 연료게이지가 점점 바닥을 향해 내려갔다. 아직 라스베가스의 화려한 불빛은
보이지 않고 도로변엔 집도 없는 깜깜절벽이었다. 게다가 네비게이션도 없는 초행길이었다.
네비게이션은 ‘영혼의 울림이 없다’고 뭔가 있는 듯한 폼을 잡으며 지도를 고집할 때였다.
마침내 기름이 떨어져간다는 경고등이 들어왔다. “곧 주유소가 나올 거야. 괜찮아.” 하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한국에서 주유경고등이 들어온 후에 달렸던 기억들을 되살리며
그때의 주행거리를 부지런히 마일 MILE로 환산해 보고 있었다.
기름 소요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모르지만 일단 씨디플레이어를 끄고 히터도 껐다.
히터를 끄자 기다렸다는 듯이 냉기가 차안으로 파고들었다. 대기 온도는 겨울철답게
급강하 하고 있었다. 경고등이 들어오고 난 이후 주행 거리가 경험 최대치를 넘어서고
있는 데도 주유소커녕 오고가는 차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비상전화 911(한국의 119)을 생각했다.
오고가는 차도 없는 곳에서 날밤을 샐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전화가 된다고 해도 나의 현 위치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내가 달리고 있는 도로 번호나 알 뿐 도대체 어디쯤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 점점 포기 쪽으로 마음을 먹으면서 우습게도 기름이 떨어질 때
차가 어떻게 설까 하는 것이 궁금해질 무렵, 어느 산길을 돌아서자 기적처럼
주유소가 나타났다. “거봐 내가 있을 거라고 했잖아!” 아내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나는 기가 살아나 소리를 쳤다. 사실 속으로는 마음을 쓸어내리고 있었지만.
‘아! 하느님 감사합니다.’
*위 사진 : 그때 그 주유소
라스베가스로 향하면서 3년 전의 그 길을 되짚었다.
그때 주유소가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아내는 “뭐 좋은 기억이라고!” 하고
어이없어했지만 나는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주위에 나와 비슷한 운전습관을 지닌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경고등에 불이 들어와야 기름을 넣는.
사람들이여, 미국에 오시면 그런 습관 버리시라.
인생관이나 철학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일 뿐더러 잘못하면 길에서 동태되기 십상입니다.^^)
*위 사진 : 아리아 리조트 ARIA RESORT
크리스마스 이브의 라스베가스는 평상시보다 한층 더 화려해 보였다.
우리는 최근에 오픈한 아리아리조트에 묵었다.
체크인을 하고 방에서 쉬다가 리조트를 돌아보았다.
지난 초가을과는 달리 식당에 카페에 가게에 카지노에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호화로운 장식물들 사이로 크리스마스 캐럴이 이어졌다.
비싼 '명품'들이라 아내를 위해 선뜻 집어들 수는 없었지만 어슬렁거리며
가게를 기웃거리는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미국에 오기 전 라스베가스를 여행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옛날 장터거리에 나오는 야바위꾼들이 호사스런 빌딩과 번쩌거리는
조명 속에 들어선 것뿐이라는 꽤나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점차 주변을 지날 일이 있으면 라스베가스에 들리곤 한다.
시기만 잘 맞으면 시설에 비해 좋은 시설의 호텔을 경험할 수 있고
이런저런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라스베가스에 오면 빼먹을 수 없는 일.
결국 그놈의 기계와 마주 앉았다.
‘혹시 이번에는’ 하는 얄팍한 생각으로 잠시 잭팟이 터져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불빛이 번쩍거리며 돌아가는 광경을 상상해 보았다.
아내는 믿지 않았지만 목표는 호텔 내 쇼핑몰를 돌면서 보아두었던
아내를 위한 루비똥 핸드백 살만큼만으로(?) 잡았다. 그러나 나는
'그놈'과의 겨룸에서 또 다시 연패의 기록을 늘이게 되었다.
명품 가방에 욕심을 부리다가 중저가 가방 값만 속절없이 날리고 말았다.
이럴 경우에 대비하여 최근에 그럴 듯한 이유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잃은 것이 아니라 당구비처럼 게임비용을 지불한 것.” 이라고.
당구비보다 우라지게 비싼 게 탈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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