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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이문재의 시집, 『제국호텔』

by 장돌뱅이. 2013. 6. 1.

 




시집의 제목이란 게
그 시집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대명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문재의 시집『제국호텔』에서
"제국호텔" 이란 제목의 연작시보다
다른 시들에 눈이 더 많이 머물렀다.

감성적인 단어나 문장에 유난히 약해지는 것은
시에 대해 매우 얄팍한 나의 소양 때문이겠지만
그러나 어쩌랴.
그게 나인 것을.

나이가 들면 병마저도 동무로
알고 살아가야한다고 하는데
작은 허물쯤이야 사랑할 수 밖에.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살
   늦가을 평상에 앉아
   바다로 가는 길의 끝에다
   지그시 힘을 준다 시린 바람이
   옛날 노래가 적힌 악보를 넘기고 있다
   바다로 가는 길 따라가던 갈대 마른 꽃들
   역광을 받아 한번 더 피어 있다
   눈부시다
   소금창고가 있던 곳
   오후 세시의 햇빛이 갯벌 위에
   수은처럼 굴러다닌다
   북북서진하는 기러기떼를 세어보는데
   젖은 눈에서 눈물 떨어진다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살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었다
                                       -이문재의 시,「소금창고」-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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