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의 제목이란 게
그 시집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대명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문재의 시집『제국호텔』에서
"제국호텔" 이란 제목의 연작시보다
다른 시들에 눈이 더 많이 머물렀다.
감성적인 단어나 문장에 유난히 약해지는 것은
시에 대해 매우 얄팍한 나의 소양 때문이겠지만
그러나 어쩌랴.
그게 나인 것을.
나이가 들면 병마저도 동무로
알고 살아가야한다고 하는데
작은 허물쯤이야 사랑할 수 밖에.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살
늦가을 평상에 앉아
바다로 가는 길의 끝에다
지그시 힘을 준다 시린 바람이
옛날 노래가 적힌 악보를 넘기고 있다
바다로 가는 길 따라가던 갈대 마른 꽃들
역광을 받아 한번 더 피어 있다
눈부시다
소금창고가 있던 곳
오후 세시의 햇빛이 갯벌 위에
수은처럼 굴러다닌다
북북서진하는 기러기떼를 세어보는데
젖은 눈에서 눈물 떨어진다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살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었다
-이문재의 시,「소금창고」-
(2008)
'일상과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당에 나가다 (0) | 2013.06.01 |
---|---|
딸 아이가 만들어준 음식 (0) | 2013.06.01 |
그때 왜 좀 더 사랑하지 않았을까? (0) | 2013.05.31 |
그런 날이 오기나할지(곱단이의 글) (0) | 2013.05.31 |
진득한 감상의 책 한 권,『패스포트』 (0) | 2013.05.3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