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

그는 페달을 밟았다

by 장돌뱅이. 2013. 6. 7.


1976년 한 미국 젊은이가 건국 200주년을 기념하여
자전거를 타고 미국을 횡단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미국건국200주년 기념위원회가 그의 아이디어를 높이 사서 자금을 지원했고
이것을 밑천으로 해서 체계적인 준비에 들어간 그는 코스를 연구하고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을 모았다.

그들이 지나간 길은 자전거와 200주년의 합성어인 ‘바이크센테니얼 트레일
BIKECENTENIAL TRAIL’ 이라 불렸다. 4000 여명이 참여하여 그 중 절반이
완주한 것으로 추산할 뿐 정확한 참가 인원은 집계가 불가능했다고 한다.
지나는 길 곳곳에서 동참하여 일부 구간만 주파한 후 돌아간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트랜스아메리카 트레일을 동일한 벙법인 자전거로 주파한 한국인이 있다.
그리고 그 기록을 "아메리카자전거여행"이란 책으로 펴냈다.
전직 동아일보기자였던 홍은택은 2005년 5월 26일부터 8월 13일까지
80일 동안 미국 동부에서 서부까지 6,400km를 자전거로 횡단을 했다.
중간에 달리지 않은 13일을 빼면 일일 평균 95km를 달린 셈이다.
그것도 텐트와 식량을 비롯한 일체의 장비를 실은 짐수레를 자전거 꽁무니에 달고서다.  

   "펑크는 열한 번 났고, 나를 추격해온 개는 100마리 쯤되는 것 같고 , 여름철이었지만
   영하1도에서 영상 43도까지의 온도와 해발고도 0미터에서 3463미터가지의 높이를
   체험했다. 또 뭐가 있을까? 열 개 주를 건넜고, 대륙분기선을 열네 번 통과했고, 시간
   대가 다섯 번 바뀌었다. 페달은 한 150만 번쯤 돌렸고, 하루 5000칼로리 이상을 섭취한
   것 같고, 결과적으로 몸무게는 3킬로그램 정도 빠졌다.

매너가 좋다고 생각했던 미국의 도로의 운전관행이 그의 기록 속에서
착각일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미국인들의 운전 매너에 대한 나의 후한 평가는
어쩌면 내가 3개월 동안 차만 몰고 다녔기에 얻은 판단이었는지도 모른다.
차와 차 사이에 오고가는 그 훌륭한 습관과 행동이 정작 인간에게 인색하다는 것은
‘물신화’로 치닫는 세태의 한 징후이기도 하리라.

   그들은 뒤에서 나타나 그라인더로 쇠를 가는 것 같은 날카로운 굉음을 내면서 옆을
   스쳐갔다. 소형트럭을 탄 어떤 녀석은 고속으로 질주하면서 내게 고함을 지르고
   갔다. 내 영어실력이 안 좋길 다행이라는 생각이지만, 최소한 ‘away’라는 단어
   하나는 알아들었다. 꺼지라는 뜻이었다. 공공의 소유인 도로를 마치 자신들의
   전유물로 착각하는 무리들이다. 가운뎃손가락을 올려 보이고 가는 녀석도 있다.
   어떤 스포츠유틸리티 차량은 나를 앞질러 간 뒤 내가 밟고 가는 그 흰 줄을
   스윽 긁고 갔다. 이렇게 치일 수 있다는 경고였다."  

그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한 해에 1500명이 자전거를 타다가 목숨을 잃으며
6만여 명이 부상을 입으며 사고 원인의 96퍼센트가 바로 자동차와 충돌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왜 자전거를 타는가?
자전거를 타고 왜 그렇게 먼 길을 가는가?
대답은 단순했다.
세상의 모든 위대한 일의 동기가 그렇듯이.   

   "왜 횡단하는가?
   그냥 좋기 때문이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나는 로키산맥을 넘기 위해 자전거여행을
   시작했다고 믿었다. 후지어패스에 오르는 순간 절정의 감격 같은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절정의 감정은 일어나지 않았다. 목표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면서
   그냥 마음이 편해졌을 뿐이다. 그런데 그 뒤부터 페달을 밟는 게 즐거워졌다.
   페달을 밟는 것 자체가 목적이고 과정이 됐다."  

오래도록, 내가 생각하기에는 초인적인 거리를, 자전거를 타는 자신의 행위와 세상에
대한 그의 단상은 고승(高僧)의 화두를 닮아있다. 그처럼 미대륙을 횡단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고, 그의 깨달음을 실천하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이지만 자주 되새기며 생활 속에
작은 일부분이라도 드러내고 싶어진다. 

   "자전거를 타는 것은 삶의 방식이다. 언제까지나 계속되며 안전하고 자동차보다
   더 효과적인 방식이다. (...) 저전거타기는 교통사고로부터 진정 해방됨을, 소비적인
  사회와 전쟁으로부터 해방됨을 뜻한다. 석유와 비만을 해결하는 길이기도 하다.
   문제는 시간이다. 자전거타기가 정착된 사회는 속도와 경쟁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다. 자전거타기가 왜 위협적인 일인지 이체 눈치챘을 것이다.
   그것은 사치스럽고 빨리 돌아가는 사회에 대한 대안이다."

   "나는 페달을 밟는다. 이 일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그게 현재를 사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벌기 위해서도 아니고 많은 거리를 가기 위해서도 아니다. 바퀴를 돌리면서
   현재에 더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살고 있다는 것을 더 진하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이 좋은 것은 그 숱한 과정을 통해서 불필요한 것들을 걸러낼 뿐 아니라 필요한
   것들의 숫자를 줄인다는 점이다. 여행을 하면 질박한 삶을 배운다. 그런데 그 여과
   작업은 잃어버리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고 의식적으로 버리려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  

   "자전거가 속도가 느리니 경치가 더 오래 머물 것 같은데, 내 경험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무엇을 봤는지, 특별한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 눈을 뜨고 있었지만 안 보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행의 진한 느낌은 있다. 자전거는 보는 게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여행이다. 넓고 긴 연속성에 잠수하는 경험이지 단편적인 장면들을
   모은 것이 아니다. 주체와 객체를 분리하지 않으면 객체를 인식해낼 수 없다."  

책을 읽으며 마음 속으로 그에게 무수한 박수를 보냈다.
단순히 역경을 무릅쓰고 대륙 횡단이라는 큰일을 해낸 불굴의 정신력과
육체적 건강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세상과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그의 안목에 대한 경의의 표시이기도 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나의 대륙 횡단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그보다 좀 더 여유 있는 일정과 조건으로 해보고 싶었다.
그의 ‘무한체력’를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았고 아내와의 동행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아내는 차를 몰며 출발한다.
아내는 중간중간 사정이 허락할 때마다 자전거를 타기로 한다.
식량과 텐트와 침낭도 차에 싣는다.
그는 그 모든 것을 자전거 꽁무니에 싣고 달렸으니
나는 한층 수월한 조건이 되는 셈이다.

반드시 그가 거쳐 간 트레일을 밟을 필요는 없으리라.
좀 더 자유롭게 곡선을 그으며 동에서 서로 혹은 서에서 동으로,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달려보리라 생각했다.
그가 말했다. 일단 일주일만 달려보라고.
더 나아갈 것인가는 그때 결정해도 된다고.

그러나 그것은 결국 꿈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내게 가까운 시일 내에 80일 정도의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일을 접고 대륙횡단에 올인한다는 것은 당장에는
무모한 일이다.대륙횡단의 꿈을 기약할 수 없는 먼 훗날로 미루면서,
그때까지 체력이나 유지해 둘 일이다.

미국횡단은 못하더라도 반드시 이루어야 할 목표로 한반도의 도보종단을 결정했다.
마라도에서 시작하여 제주도와 목포를 거쳐 지리산으로 향한 다음에는
산행과 도보여행을 병행하며 백두대간을 따라 북상하는 것이다.
그때까지 통일이 안 된다면 동해안의 통일전망대가 종착지가 될 것이고,
통일이 되어 남북간의 왕래가 자유로워진다면 백두산까지도 올라가 보리라.
본격적으로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내 땅의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만나 보는 것이다.
국토의 종단 역시 아내도 함께 걸어가는 것을 전제로 했다.
걷는 거리를 조정하면 아내도 가능하리라 믿는다.

이 역시 내게 주어진 시간이 문제일 것이지만
이것만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고 의무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를 위해 때가 되면 나도 생활의 방향과 내용을 바꾸는
야무진 결단을 내려야할지도 모르겠다.

무수한 상상이 이어지는 책 한권의 독서는 보배롭다.
모든 것이 아직 미래의 일이지만 그렇다고 안타깝지 않다.
우선은 그 꿈을 위해 열심히 살고 볼 일이다.
서두르지 말자.
아직 내게 남은 인생은 길고
꿈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2008.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