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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아기 참새 찌꾸』

by 장돌뱅이. 2013. 6. 14.




곽재구의 시에 빠져든 적이 있었다.

그의 신춘문예 당선작 「사평역(沙平驛)에서」를 읽고
사평역이 어디에 있는
작은 간이역인가 궁금해 하던 적이 있었다.

나중에「사평역」이라는 임철우의
단편소설을 읽고는
사평역이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이렇게 시와 소설로 그려지는가 하는
생각에 그곳을 찾아보려고 한 적도 있었다.
(이 시와 소설의 첫머리가 모두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로 시작한다.)
 

사평역은 가상의 공간이었다.
어디에도 없는 역이었다.
아니 우리 사는 세상이었다.
그래서 어디에도 있는 흔한 ‘역’이었다.
희망처럼 ‘좀처럼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리는
곽재구의 따뜻한 시 구절들을 나는 사랑했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곽재구의 시, 「사평역」- 

『아기 참새 찌꾸』는 그런 곽재구가 쓴 동화이다.
참새들의 세계에서 ‘찌꾸’는 ‘초원의 개척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동화는 공해와 폐수, 폭력과 죽음의 세상을 넘어
어딘가 존재하는 “모든 참새들의 빛나는 땅”인 푸른 초원을 찾아가는
찌꾸가 겪는 모험과 사랑을 그렸다.

같은 새 종류라서 그런가. 리처드바크의 『갈매기의꿈』과
어딘가 살짝 닮은 구석이 있어 보이기도 했다.
 

귀국길에 읽은 동화 중에
개인적으로 『인도로 간 또또』에 더 마음이 갔지만
제목만으로도
이제까지 무심히 보아왔던 참새들을 다른 눈으로 볼 것 같다.
이름도 너무 예쁜
『아기 참새 찌꾸』.
 

동화를 읽다가 문득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어느 날 집 화단에 모여 있는 참새 떼를 향해 돌팔매질을 한 적이 있다.
꼭 그럴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놀라서 날아오르던 새 중의 한 마리가 그 돌에 맞았다.
나는 새를 잡았다는 생각에 쾌재를 부르며 화단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내가 본 것은 고개를 늘어뜨린 채
고통스러운듯 눈을 감고 있는 아주 작은 생명이었다.
아직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그 불운한 참새는
나의 손안에서 가냘프게 떨며 식어가고 있었다.

그 미세한 떨림은 큰 파동으로 증폭되어
나의 마음을 후려쳤다.

‘죄를 지었구나!’

처음으로 죄라는 의미가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다가왔다.
나는 막막한 두려움 속에
그 참새를 화단에 묻어주었다.

그 참새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혹 동화 속의 나오는 참새 중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초원의 방랑자’라는 찌뿌?‘
초원의 시’라는 찌무?
아니면 ‘숲속의 이슬’ 도미?‘
숲 속의 바람’ 도린?‘
숲 속의 샘’ 도연?
참새들의 왕 도솔?...
 

책을 덮고 나는
한 때 푸른 하늘을 친구들과 떼 지어 열심히 날던
그 작은 생명체에게 뒤늦은 사죄를 했다.
미안해.
부디
평화로운 세상으로 가렴.

(20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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