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는 어릴 적부터 전자오락에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여자 아이라 남자아이들에 비해 그렇긴 하겠지만
언젠가 딸아이는 그 이유를 초등학교 시절 내가 사다준
동화책 『황금동전의 비밀』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황금동전의 비밀』은 우리가 무심코 누르는 스위치에 따라
쓰러지고 피 흘리고 죽는 역할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오락기 화면 속 등장인물(동화 속에선 ‘그림자 인간’이라고 함)들의
슬픈 운명과 고통에 관한 이야기다.
링 위에선 처음부터 심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두 명의 선수만
서로 미친 듯이 싸우고 있을 뿐입니다.
오 분, 십 분, 이십 분.......
여전히 경기는 계속 중입니다. 두 선수의 몸뚱이는 완전히 벌겋게 피투성이로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둘은 멈추지 못합니다.
(중략)
“치료를 받고 쉰다고......?
아아,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로구나.
휴식이라니? 얘야, 우린 오늘까지 정확히 꼭 삼만 삼천서른세 번째 시합을
해 왔단다. 잠시도 쉬지 못하고 말야.”
“맞아 나랑 너랑 꼭 삼만 삼천서른세 번째 줄곧 싸워왔지.”
또다른 선수가 한숨을 푸욱 내쉬면서 말했습니다.
(중략)
“이런 끔찍한 시합을 당장 그만두면 될 거 아녜요?”
“그만두다니! 우릴 놀리려는 건 아니겠지? 어떻게 그만둘 수 있단 말이냐.
우리 둘은 영원히 이렇게 서로 싸우도록 처음부터 만들어져 있는걸.”
“아아, 꼬마야. 우린 정말 쉬고 싶단다. 더 이상 이런 끔찍한 싸움을 계속하긴
싫어. 하지만 우리로선 도리가 없구나. 차라리 이대로 숨이 멎어 버렸으면!”
그런 ‘그림자 인간’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던 탓에
오락기를 가까이 할 수 없었다던 어린 딸아이의 마음이 맑고 신선하다.
달리 ‘어린이를 어른들의 아버지라 하겠는가?
동화의 후반부가 애매모호하고 좀 도식적으로 흐른 것은 아쉬웠지만
어린 딸아이의 마음을 곱게 물들여주었던 동화 중의 하나로
나는『황금동전의 비밀』을 기억할 것이다.
이 동화는 여러분이 좋아하는 전자 오락 게임 기계 속 이상한 나라의 이야기랍니다.
아마 전자 오락 게임을 싫어하는 어린이는 별로 없을 거예요. 참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놀이임엔 틀림없어요.
하지만 나는 이따금 그런 어린이 여러분을 보고 있으면, 문득 뭔가 안타깝고 걱정스런
마음이 들곤 했지요. 왜냐하면,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그 기계들이 혹시나 여러분에게
다른 소중한 아름다운 것들 - 하늘의 별, 뭉게구름, 새벽녘 풀잎에 맺히는 이슬 방울,
작고 귀여운 새의 지저귐, 들꽃....... 그런 놀랍고도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이 세상이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깜박 잊어버리도록 만들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하기 때문
이지요.
작가의 서문이다.
동화는 어린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2008.7)
'일상과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의 학교』 - E.데아미치스 (0) | 2013.06.18 |
---|---|
타고르의 시 (0) | 2013.06.18 |
『아기 참새 찌꾸』 (0) | 2013.06.14 |
『인도로 간 또또』 (0) | 2013.06.14 |
그들의 배후 (0) | 2013.06.1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