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떨구고 걷다가 다보탑(多寶塔)을 주웠다
국보 20호를 줍는 횡재를 했다
석존(釋尊)이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
땅속에서 솟아나 찬탄했다는 다보탑을
두 발 닿은 여기가 영취산 어디인가
어깨를 치고 지나간 행인 중에 석존이 계셨는가
고개를 떨구면 세상은 아무데나 불국 정토가 되는가
정신 차려 다시 보면 빼알간 구리동전
꺾어진 목고개로 주저앉고 싶은 때는
쓸모 있는 듯 별 쓸모없는 10원짜리
그렇게 살아왔다는가 그렇게 살아가라는가.
-유안진의 시, 「다보탑을 줍다」-
젊은 시절 한 때 그녀의 글을 싫어한 적이 있다.
무관심 한 것이 아니라 분명 싫어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7080’의 세상은
추억하는 노랫말처럼
낭만적인 것만이 아니어서
사람들의 꿈과 일상이 부패한 권력과
가진자들의 텀욕으로 얼룩지고 있는데,
그녀의 글은 그런 세상에서 한가로이 외돌아 앉아
너무 깔끔한 향수 냄새만을 풍긴다고 생각했다.
‘오렌지향기가 없는 겨울은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운운.
그것이 그녀의 글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함부로 그녀의 글에서
그런 ‘오렌지향기’를 맡았고
그것은 힘들게 한겨울을 견디는 사람들에게
죄악이라고까지 생각했다.
스스로도 치열하게 시대를 고민해본 적도 없으니
터무니없는 오만이고
황당한 시건방짐이었다.
오늘
반성문을 쓰는 심정으로
꼼꼼히 그녀의 글을 읽었다.
지천명(知天命)을 하기에는 어림없지만
시간과 세월은 내 노력과 상관없이 나를 떠밀어
그 나이의 문턱에 넘어서게 했다.
앞선 길 저만치서 그녀도 가고 있으리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몫을 힘들게 지고.
부끄러워하고 용서를 구해야할 사람은 나다.
“쓸모 있는 듯 별 쓸모없는 10원짜리” 발걸음을
오늘도 그저 부산히 옮기는...
"그렇게 살아왔다는가 그렇게 살아가라는가"
*글의 제목도 그녀의 시에서 빌려왔다.
(20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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