죤스타인벡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대학 신입생 시절,
그의 소설 『분노의포도』를 추천해 준 한 선배 덕분이었다.
제일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자본주의가 본격적인 번영을 누리는가 싶던 어느 날
경제 대공황이 불어 닥쳤고, 거기에 자연재해마저 더해지면서 가난과 절망에 허덕이던
소설 속 주인공 가족은 희망의 상징인 캘리포니아를 향해 먼 길을 떠난다.
애굽을 떠나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으로 향하는 이스라엘의 백성들처럼.
그러나 험난한 여정에 식구들은 죽거나 혹은 헤어지고
마침내 도착한 그곳도 이미 구원의 땅은 아니었다.
번영과 풍요의 상징으로만 여겨지던 미국에서 일어난, 상상을 뛰어넘는
굶주림과 비참함이 사실적으로 그려진 소설은 현장감 넘치는 르뽀와 같았다.
내게 미국이란? 아니면 자본주의란? 하는 생각을 최초로 해보는 계기가 된
소설이 아닌가 싶다. (그런다고 지금 뭐 더 깊게 알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미국 생활의 ‘신입생’으로 미국에 대한 책을 - 딱딱한 평론이나 논문집
대신에 여행기를 위주로 해서 이것저것 읽어보고 있는 중이다.
죤스타인벡이 지은 『찰리와 함께 한 여행』 은 필수도서라 할 수 있겠다.
죤스타인벡은 ‘로시난테’란 이름을 붙인 자동차에 자신의 애견인 찰리를 태우고
1960년 9월에서 12월까지 34개주, 1만여 마일을 운전하며 미국을 돌아보았다.
여행의 동기는 ‘변화된 미국을 발견’하려는 작가적 성실성이었다.
미국에 관한 글을 쓰는 작가지만 나는 실은 기억에만 의존해왔다. 그런데 기억이란
기껏해야 결점과 왜곡투성이의 밑천일 뿐이다. 나는 참된 미국의 언어를 듣지 못하고
미국의 풀과 나무와 시궁창이 풍기는 진짜 냄새를 모르고, 그 산과 물 , 또 일광의
빛깔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오직 책이나 신문을 통해서 미국의 변화를 알았을 분이다. 허나 어디 그뿐이랴.
25년 동안이나 내 나라를 몸으로 느껴보질 못했다. 간단히 말해서 알지도 못하는
것을 써왔던 셈이다. 이른바 작가라면 이것은 범죄에 해당될 일이다.
1960년은 우리에게는 아직 본격적인 산업화 이전의 상업자본주의적인 가난한
시대였지만 미국은 이차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의 시기를 거치면서 사상 유례가 없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작가는 곳곳에서 그 번영의 뒷그림자를 읽어내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며 조심스런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우리가 산더미처럼 내다 버리는 물건이 쓰는 물건보다 많다. 바로 이 사실만 가지고도
우리는 미국이란 나라의 생산이 가지는 대담무쌍한 풍요를 엿볼 수 있다. 쓰레기는
말하자면 그 지수와 같은 것이다. 차를 몰고 가면서 나는 프랑스나 이탈리아 같으면
이렇게 버리는 물건을 하나하나 다 살려서 다른 데다 요긴하게 쓰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서로 다른 제도를 두고 비판을 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내 생각 같아서는 우리가
더는 낭비할 수 없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강물 속에 넣는 화학 폐기물,
도처에다 버리는 금속 폐기물, 똥 속이나 바다 깊이 들어가는 원자력 폐기물, 이렇듯
우리는 숱한 것을 버리고 있다. 아메리칸 인디언 부락은 오물이 너무 차면 이동을 했다.
그러나 우리에겐 이동할 장소가 없다.
죤스타인벡의 여행기에는 이처럼 우리 사회와 비슷한 경우의 이야기들이
종종 등장한다. “사내자식이 기껏 미용사가 도려고 한다”고 흥분하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완고함을 이해할 수 없는 젊은 아들의 이야기에서부터
도시의 팽창과 발전과는 거꾸로 시대의 주변부에서 쇄락해져가는 시골의 풍경과
텔레비전의 보급과 과 도로의 개통으로 사라져가는 지방 고유의 언어 등등.
일찍이 숱한 사람들이 정착해 살던 광대한 토지건만 이제는 버려져서 숲이 무성하고
짐승과 벌목장, 아니면 추위밖엔 남는 것이 없다는 사실은 언제나 잊히지 않는다.
대도시는 점점 커지고 마을은 자꾸만 위축되어 가고 있다. 식료, 잡화, 철물, 의류 등
그 어떤 장사를 불문하고 조그만 촌락의 상점들은 슈퍼마켓이나 연쇄점을 도저히 당해
낼 길이 없다. 식견 있는 지주 양반들이 오여 앉아서는 서로의 이견을 나누고, 그리하여
이 나라의 국민성이 형성되는 자리인 시골 상점들, 이들이 보여주는 그 귀중하고도
그리운 모습은 오늘날 급속도로 사라져 가고 있다.
한때는 자기 집을 든든하게 꾸려서 비바람에도 끄떡없고, 서리나 한발, 해충 같은 것
하나도 무섭지 않던 그런 사람들이 이제는 대도시의 소란한 가슴팍에 매달려 살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인들은 교통이 혼잡한 거리와 연무에 그을리는 하늘에 도전과 애정을 느끼며
공장에서 토해내는 연기와 급정거하는 자동차 타이어의 귀를 찢는 듯한 소리와 줄줄이
매달이 물건들에 싸여서 질식해 가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는 조그만 도시나 마을들은
노상 위축되어 소멸을 향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내가 여행하는 목적 중에는 지방 사람들의 악센트와 리듬, 어조 등을 듣자는 것도 들어
있었다. 보통 쓰는 말이라는 것은 단어나 문장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딜 가나
귀를 기울였다. 내가 받은 인상 같아서는 소위 사투리라는 것이 사라지는 과정이 아닌가
싶었다. 이미 없어진 게 아니라 없어져 가고 있다는 말이다. 40년에 걸친 라디오 방송과
20년에 이르는 텔레비전 방송이 강력한 영향을 미쳤을 게다. 속도는 느리지만 필연적인
과정에 의해서 매스커뮤니케이션이 지방색이라는 것을 없애지 않을 수 없다.
(...) 언어와 언어의 무한한 가능성을 사랑하는 나는 이 필ㅇㄴ성이 슬프다. 지방의
액센트와 함께 억양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언어를 풍부하게 해주고 언어 속에
장소와 시간에 관한 시정을 가득 담아주는 관용어나 수사 표현이 다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 대신에 오는 것은 깨끗한 포장지로 싸서 규격에 맞춘, 풍미 하나 없는
표준어다. (...) 어떤 지방도 하이웨이, 고압 전선, 전국 텔레비전 방송 같은 것에
오래 저항할 수는 없다.
싸움이 시작되었다. 내 누이들은 아직도 공화당 지지파이다.
전쟁 중에 내란이 가장 치열하다면 집안 식구끼리의 정치 논쟁이야말로 가장 격렬하고
가장 지독하다. 다른 낯선 사람하고라면 나는 냉정하게 분석적으로 정치를 논할 수가
있다. 그러나 누이들을 상대로 해서는 도저히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논쟁을 할 때마다
우리는 너무 격분한 끝에 숨이 차고, 나중엔 기진맥진해 버린다. 어떠한 논점에 대해서
도 아무런 타협도 볼 수 없다. 어느 쪽도 상대방에게 관용을 베푸는 법이 없고 또 그런
것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매일 저녁 우리는 약속을 하곤 했다.
“자, 다들 다정하게 지냅시다. 오늘 밤은 정치 얘기는 안 하기로 하는 거예요.”
그러나 10분 후에는 벌써 소리소리 지르고 있었다.
“저는 깜둥이가 있는 학교에는 제 자식을 절대로 안 보낼 겁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런 학교에다가 자식을 보내느니 차라리 제 목숨을 버리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러기
전에 그 빌어먹을 놈의 깜둥이들을 모조리 처치하고 말겠습니다!” (...)
“아니! 이 양반 깜둥이 편을 드는 것 같네. 내 미리 눈칠 챌 만도 했었는데....... 흥!
여기까지 내려와서 우리한테 이래라저래라 하고 말썽 피는 패군! 그렇게 무사하게 넘어
갈 순 없을 걸. 당신네 같이 깜둥이 편을 든 빨갱이를 우린 감시하고 있단 말요.”
(...)
(흑인) 청년은 열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말도 조리 있게 했다. 열망과 격정이 역력하게
보이는 청년이었다. 그러나 몽고메리에서 하차했을 때 창문 안으로 몸을 들이밀며 그는
웃었다. “부끄럽습니다. 너무 이기적인 말씀만 드렸군요. 그러나 저는 죽기 전에 꼭 보고
싶습니다. 바로 여기서 인간이 된 저 자신을 꼭 보겠습니다! 그것도 머지않은 장래에
말입니다.” 그런 뒤 홱 몸을 돌리고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재빨리 걸어가 버렸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우리 사회의 망국병인 지역감정을 생각했다.
자신의 선택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어디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누군가를
차별한다는 것이 얼굴색으로 차별하는 것보다 더 나을 수는 없는 것이다. 군부독재
시절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비즈니스’를 위해 만든 억지의 굴레에 스스로를
몰아넣는 우리 사회의 '집단히스테리'는 “깜둥이를 모두 처치하겠다” 백인 청년의
'정신'과 비슷한 수준이다.)
죤 스타인벡은 여행을 통해 미국의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았을까?
여행기에 드러난 다양한 개개인의 인간상(像)이 미국(인)임은 분명하지만
그들의 산술적인 합계가 미국(인)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 나라와 한 국민의 모습이란 요약하여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것이 어떤 “공통점”이라고 꼭 집어서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죤스타인벡은 아메리카(인)가 지닌 어떤 “공통점”을 이야기했다.
왠지 내겐 그것이 그가 미국에 거는 어떤 희망 같은 것이라 느껴지기도 했는데...
이 책을 읽고 동감하는 미국인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같은 미국인인데서 서로
닮았다는 사실을 의미할 따름이다. (...)
만약 철저하게 관찰한 하나의 보편적인 사실을 대야만 한다면, 나로서는 이런 말을
할 수 있으리라. 즉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리적으로 엄청나게 크고, 이른바 지역주의가
강하고, 세계 각지에서 온 인종이 섞여 살고는 있지만, 틀림없는 하나의 국가요, 새로운
민족이다. 북부인, 남부인, 동부인 하는 이름이 있긴 하지만, 역시 아메리카인은 어디
까지나 아메리카인이다. 또 영국계, 이탈리아계, 유대계, 독일계, 폴란드계 하지만
그들은 다 본질적으로 아메리카인이다. 애국심 때문에 함부로 떠드는 소리는 아니다.
신중하게 관찰한 사실이다. 캘리포니아의 중국계도, 보스턴의 아일랜드계도, 위스콘신
주의 독일계도, 또 그러고 보면 알라배마의 흑인들도, 다 서로 다른 점보다는 공통적인
것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여행기 중에서 그가 고향인 샌프란시스코로 들어가는 장면을 인상적으로 읽었다.
아마 멀지 않은 날 아내가 내가 가려고 하는 곳이 샌프란시스코이기에
좀 더 큰 기대감과 집중력을 가지고 읽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서 나도 “소살리토 옆을 지나서 금문교로 들어가는 도로에” 아내와 함께 서서
“만(灣) 건너편의 샌프란시스코를 바라보”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샌프란시스코는 찬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소살리토 옆을 지나서 금문교로 들어가는
도로에서 나는 만(灣) 건너편의 샌프란시스코를 바라보았다. 오후의 태양은 이 도시를
백색과 황금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행복한 꿈속에 나타나는 장엄한 도시 모양 이
도시는 언덕 위에 서 있는 것이다. (...) 태평양 상공의 푸르름을 배경으로 하고 파도
처럼 오르내리는 이 백색과 황금색의 아크로폴리스는 진정 황홀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결코 실재하지 않았을 중세기 이탈리아 도시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빛깔을
띠고 있었다. 나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샌프란시스코 시내와 바다에서 이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에 목걸이 모양 걸려 있는 다리를 구경했다. 남쪽에 보이는, 좀 더 높은
녹색의 산등성이 위로 저녁 안개가 마치 황금의 도시로 잠자러 가는 양떼 모양
뭉게뭉게 흐르고 있었다. 이보다 아름다운 샌프란시스코를 나는 본 일이 없다.
(20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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