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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고향길』

by 장돌뱅이. 2013. 6. 19.


윤중호의 시에서 만난 고향은 행복했다.
그래서 두 번을 읽었나 보다.

먼 유년의 가난한 기억.
'엄니의 막막한 행상길'에,
칙칙푹푹 잘 자라는 '기찻길 옆 애호박'에,
노스님 떠난 선방에 내리는 윤사월 실비 속에,
그의 고향이 있었고
우리의 고향이 있었다.

특별나달 것이 없는 것들은
가을 햇볕이 달군 툇마루처럼 따뜻하게 다가왔고
밖에서 이룬 요란한 아우성과 거대한 성취들을
왜소하게 만드는 힘이 있어 보였다.

"우리 모두가 돌아가야 할 길"

세상이 소란스러운 것은
언제부터인가 온갖 이유를 들어
그 길에서 멀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를 읽으면서 우리 경험의 빛으로 시를 판단하기를 멈추고
시의 빛으로 우리 경험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사람이 누구였던가.
여러 번 눈길을 주었던 아래와 같은 시.


   영목에서 

    어릴 때는 차라리, 집도 절도 피붙이도 없는 처량한
   신세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뜬구름처
   럼 아무 걸림 없이 더돌다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때는 칼날 같은 세상의 경계에 서고 싶은 적이 있
   었다. 자유라는 말, 정의라는 말, 노동이라는 말, 그
   리고 살 만한 세상이라는 말, 그 날 위에 서서 스스로
   채찍질하며 고개 숙여 몸을 던져도 좋다고 생각했다.

    한때는 귀신이 펑펑 울 그런 해원의 詩를 쓰고 싶었
   다. 천년의 세월에도 닳지 않을, 언듯 주는 눈길에도
   수만 번의 인연을 떠올려 서로의 묵은 업장을 눈물로
   녹이는 그런 시. 

    이제 이 나이가 되어서야, 지게 작대기 장단이 그리
   운 이 나이가 되어서야, 고향은 너무 멀고 그리운 사
   람들 하나 둘 비탈에 묻힌 이 나이가 되어서야, 돌아
   갈 길이 보인다.

    대천 뱃길이 끊긴 영목에서 보면, 서해 바다 통째로
   하늘을 보듬고 서서 토해내는 그리운 노을을 가르며
   날아가는 갈매기.

    아무 것도 이룬 바 없으나, 흔적 없어 아름다운 사람의 길,
    어두워질수록 더욱 또렷해.

(20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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