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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일하는 아이들』

by 장돌뱅이. 2013. 6. 19.




학창시절 고(故) 이오덕선생님의 책,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이란 교육 수필집과
"시정신과 유희정신"이란 문학평론집을 감명 깊게 읽은 기억이 있다.
선생님이 지은 "우리글 바로쓰기"는
여전히 나의 글쓰기의 지침서이기도 하다.

그때 만났던 어린 학생들의 글을
30여 년만에  이오덕선생님의『일하는 아이들』을 통해
다시 읽어보았다.

가난한 시절. 어린 동심들이
그 가난을 살아내는 모습이 거기 있었다.
때로 슬퍼하고
때로 기뻐하며
그러나 언제나 정직하게 
자신의 생활을 바라본 글이 또한 거기에 있었다.

'공은 공은 바보 . 살짝만 건드려도 펄쩍 뛰며 화를' 낸다거나, 
'제트기는 제트기는 심술장이야, 잠자는 우리 아기 잠깨어 놓고
어머니가 야단칠까 도망갑니다' 하는 식의
말 장난이 거기에는 없었다.

비록 가난은 아픈 것이고
일은  힘든 것이었겠지만
아이들의 정직한 생각과 표현이 대견스러웠다.

그들의 정직함으로

세상에 널린 말과 글을 정리해야 하리라.

   학교에서 점심 시간만 다가오면
   나는 눈물이 난다.
   그래도 동무들이 보는 데는 울지 않아도
   나 혼자 울 때가 있다.
   우리 집에는 양식이 없어
   밥을 먹지 않을 때가 많다.
   집에 돌아와 보면 동생들이
   배고파서 울상을 하고 있다.
   점심도 나물죽을 끓여 먹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산수 예습을 하면서 나는
   공부만 잘하면 제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일기를 쓰고 있는 나의 눈에는
   또 눈물이 비 오듯 하는 것이다.
                - 「눈물」, 1963년 5월,  상주 청리 5년 이달수  -

가난과 배고픔.
무슨 말이 필요하랴.
글이 그에게 양식은 되지 못하였겠지만
위로는 되었으리라.

   아기를 업고
   골목을 다니고 있다니까
   아기가 잠이 들었다.
   아기가 잠이 들고는
   내 등때기에 엎드렸다.
   그래서 나는 아기를
   방에 재워놓고 나니까
   등때기가 없는 것 같다.
                       -「아기업기」, 1972년,  문경 김룡 6년 이후분 -

'등때기가 없는 것 같다.'
이오덕선생님은 이 구절을
아이를 업어본 사람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훌륭한 표현이라고 했다.

   담배를 심는데
   구덩이를 잘못 파서
   엉덩이를 얻어맞았다.
   내가 하하 허허 웃었다.
   일월산 보고 웃었다.
                    -「담배심기」, 1970년,  안동 대곡분교 3년 김태운 -

일을 하다
일월산을
보고 웃는(웃으려 하는)
10살의 어린 마음이 넉넉하기 그지없다.

   안죽도 두 번만 지면 된다.
   또 한 번만 지면 다진다
.
                  -「나락을 지고」,  1968년 안동 대곡분교 2년 이용국 -
                  * 안죽도 = 아직도

가을 볏단을 져 나르면서
고된 시간을 참아내는 모습이
짧은 글 속에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내 마음에는 날마다 놀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사무 일만 시킨다.
   내 마음에는 도망갔으면 좋겠다.
                -「내 마음」,  1969년 안동 대곡분교 2년 이승영-

어린 마음에 일을 하는 것이
어떻게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겠는가.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그려내는 글.
참된 글은 결코 미사여구의 나열이나
기발함의 말장난이 아닌 것이다.

글은 원래 말이라고 한다.
아래와 같은 글에선 일상에서 쓰는 평이한 말들이
자연스럽게 구사되어있다.

   달구베실꽃이
   불을 켰다.
   낮이나 밤이나
   안 꺼진다.
                -「달구베실꽃」,  1969년 안동 대곡분교 3년 김대현-
              
 *달구베실꽃=닭벼슬꽃=맨드라미꽃


   개양감곷이 널찌마 자 먹고,
   바라고 있다가 떨어지면 자 먹고
               -「개양감꽃」,  1967년 경주 2년 최성희 -
               *널찌마 자먹고 = 떨어지면 주워먹고 (2008.10)

그때 연필에 침 발라가며 이글을 눌러쓰던
고사리손들에도 어느 덧 지천명의  50을 지난
세월의 주름이 자리를 잡아가리라.

그들 모두가 글을 쓰던 그 마음 그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꿋꿋하게 살아내고 있으리란
믿음과 함께 문득 그들의 가난이 궁금해진다.
이제 허리를 좀 펴고 옛이야기를 하며 살고들 있는지...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누가 5장 20절)
 

(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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