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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피정을 다녀오며

by 장돌뱅이. 2013. 6. 20.

10월말 교리 공부를 하고 있는 성당의
'훈련병' 신자반에서 1박2일로 피정(避靜)을 다녀왔다. 

피정?
생소한 단어였다.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고요하고 정숙한 곳으로 옮겨감'을 말하는데
성당에서는 '조용한 곳에서 행하는 종교적 수련'을 의미하는 듯 했다.

한자는 해석이  어렵고 재미있다.
일테면 피서(避暑)는 더위'로'  피해가는 것이 아니고
더위로'부터' 피해가는  것이지 않는가.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이란 글을
'정신을 집중하면 못 이룰 일이 있겠는가' 대신에
'정신을 집중해도 어떤 일도 안된다'  라고 해석하면
어법상 어색하긴 하지만 문법적으로는 어디가 틀리는지
모르겠다고 하던 학창 시절의 장난스런 의문을 나는 여전히 갖고 있다.^^
 

 

아무튼 피정은 일테면 대학시절의 MT 같은 것이었다.
종교적 수련의 의미를 떠나서도
아내와 함께 피정이 즐거웠던 것은
그런 옛 분위기에 젖어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밤 늦게까지 이어진 수녀님의 강의는
전래 초기에 이런저런 이유로 천주교에 가해졌던 탄압과
그로 인한 순교의 역사에 집중되었다.

솔직히 순교는 내게  다다를 수 없는 '신의 경지' 로 느껴져
전율하면서도 쉽게 가까이 할 수 없는 '저 높은 곳'이었다.
하지만 탄압을 피해 산 속으로 피해간 교인들 중에서
(그 혹독한 상황 속에서도) 굶어죽은 사람은 없었다는
- 그 이유가 철저한 나눔에 바탕을 둔 공동체적 생활에 있었다는,
수녀님의 말씀은 감동스런 ''인간의 역사'로 다가왔다.
 

세상이 혼란스럽다.
평소에는 잘 입에 올리지 않던 나라살림살이를 걱정해보기도 하고
날마다 새롭게 불거져 나오는 낯선 정치경제적 단어들의 의미를
고민해보기도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눈 비비고 출근을 하고 해 저무는 저녁이면 흔들리는 차 속에
몸을 싣고 퇴근을 하며 살아온 무지랭이로서는
한두 달 뒤의 세상조차 만만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국가가 하는 일이란 게 결국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합법적으로' 돈을 거두어
부유한 사람들에게 몰아주는 것 아니겠냐는 냉소가
그럴 듯 하게 와닿기도 한다.

나눔...
경제적인 용어는 아니겠지만
인간다운 삶을 위해 세상이 고민해야 할 일은
더 많은 생산과 소비와 시장과 경쟁이 아니라
결국 나눔뿐일 것이다.

몇 개의 빵으로도 오천명이 먹을 수 있었다는 성경의 기적이
'슈퍼 킹왕짱'으로서의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찬양과 과시가 아니라
이 땅의 초기 천주교 역사에서 보듯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혹은 만들어내야 할)
나눔의 위대함과 지혜로움에 대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면
아직 믿음이 제대로 서지 않은 예비신자 수준의 발상일런지......

(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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