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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WILD SWANS - THREE DAUGHTERS OF CHINA』

by 장돌뱅이. 2013. 6. 21.

미국인 에드가 스노우는 장개석의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 내전이 한창이던 시기에 중국을 돌아보고 『중국의 붉은별(RED STAR OVER CHINA)』를 썼다. 그는 그 책에서 가난과 기근으로 수백만의 사람들이 굶어 죽는 참상과 부정부패와 호의호식에 물든 국민당 관리들의 타락한 모습을 기록하면서 공산당의 궁극적인 승리를 예언했다.

그 이유는 공산당에 대한 민중들의 광범위한 지지였다. 그들은 겸손하고 공정한 물고기였고 민중은 물이었다. 그를 바탕으로 중국공산당은 이른바 ‘장정(長征)’으로 대표되는 - 매일 한번 정도의 전투를 치르면서 만년설이 덮여있는 험준한 산맥을 넘고 수십 개의 강을 건너 일 년여 동안 하루 평균 약 40KM씩 총 2만 5천 리를 걸어야 했던 - 고난의 행군을 이겨냈고 마침내 승리했다. 그리고 그 후...

 『WILD SWANS - THREE DAUGHTERS OF CHINA』은 그 격변의 중국 현대사를 몸으로 겪은 3대에 걸친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군벌의 첩이었다가 훗날 의사의 아내가 된 외할머니와 원칙과 도덕성으로 무장한 남편을 만나 함께 공산당에 투신한 어머니, 그리고 그런 부모의 덕에 혁명 후 남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하다가 문화혁명의 광풍에 휩쓸려 가족들이 흩어지고 벽지로 추방당해야 했던 『WILD SWANS』의 저자 장융(JUNG CHANG)이 그들이다.

특히 1949년 10월의 중화인민공화국 선포 이후 형식화 및 도식화, 관료화 되어가는 새로운 체제의 변모와 이어지는 문화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저자와 저자의 가족들이 당해야 했던 공포와 고통이 문장마다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체제의 탄압 속에서도 끝까지 인간의 모습을 지키려 했던 그들 가족들의 눈물겨운 모습도 함께.

몇 줄의 책을 읽은 것만으로, 혹은 어느 술자리에선가 주워들어 잘 이해하지도 못한 ‘인식론’이니 ‘모순론’이니를 부끄러움도 없이 함부로 입에 올린 적이 있었다. ‘사회주의 농촌의 건설’과 ‘노동을 통한 인간개조’ 의 명분 아래 지식인과 도시의 청년 학생들이 농촌으로 내려가 일정기간 노동을 해야 한다는 이른바 ‘하방(下放)’을, 인간다운 세상을 위한 선진적인 제도로 이해하여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본 적도 있었다. 7080 시대의 부정한 정권에 억눌린 우리 사회의 숨통이었던 이영희 교수의『전환시대의 논리』나 『우상과 이성』, 그리고 『8억인과의 대화』, 혹은 앞선 언급한 『중국의 붉은 별』이나 『모택동사상』 등을 ‘충격적으로’ 읽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수천 년의 누적된 역사적 모순을 깨치고 자신들의 힘으로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중국인들의 저력과 그 중심에 서 있던 모택동의 모습이 7-80년대라는 척박한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너무 빛나 보였기 때문이었다.

『WILD SWANS』에서 그려진 모택동에게선 음흉하고 치밀하며 광기와 권모술수에 사로잡힌 절대 권력자의 냄새가 질펀하다. 중국공산당이 공식적인 과오로 인정한 문화혁명 (아니 어떤 공식적인 평가를 내렸다 해도), 그는 무고한 민중들을 극심한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그 광기 어린 폭력과 파괴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런 잘못에도 불구하고 굶주림과 분열로 나락에 떨어진 중국을 일으키고 얼마 전 있었던 과시적인 올림픽에서 보듯 미래에 대한 도전의 의지로 충만한 중국의 바탕에 그의 걸출한 기여가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세상의 많은 일들은 항상 ‘그 다음’이 문제일 때가 많다. 중국공산당의 혁명 ‘그다음’도 그렇게 이해한다.『중국의 붉은 별』도 『WILD SWANS』도 다만 각기 다른 시대의 성실한 기록일 뿐이다.
 1952년생인 저자는 등소평 복권 후 시험을 통해 선발된 최초의 영국 유학생으로 지금은 런던에 정착하여 대학교수가 되었다고 한다.

(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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