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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첫 새벽

by 장돌뱅이. 2013. 6. 21.

귀국 첫날
이른 새벽에 눈이 떠졌다.
시차 때문이다. 일상의 관성은 쉽게 떨쳐지는 것이 아니니까.
곧 이어 아내도 일어났다.

"강변이나 걸을까?"
아내는 혼쾌히 그러자고 했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
그러나 우리는 행운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포근한 겨울은 내가 머물고 있는
샌디에고의 전형적인 날씨이니까.
한국에선 한국다운 겨울을 맛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나서자
소리를 지르면 유리창처럼 깨질 것 같은
쨍쨍한 추위가 기다렸다는 듯 온몸을 조여왔다.
"이히!"
아내와 나는 개구장이처럼 소리를 질렀다.

강변으로 나가는 길
생각지 않았던 성당과 마주쳤다.
미국에서 생활하기 전까진
그래서 세례를 받기 전까진
별 의미가 없던 곳이다.

우리는 마침 시작되고 있던 새벽미사에 참석했다.
딸아이는 나의 성당행을 놀라움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제 겨우 형식적인 출석의 단계일 뿐이다.
반복되는 형식이 본질을 변화시킬 수 있을런지는
아직 미지수라고 해야겠다.

강변길.
샌디에고에선 없는 길이다.
바다와 호수, 산과 공원은 가까이 있지만
강이라 이름 붙여진 곳은 실상 아주 작은 시내였고
그나나 메마른 바닥을 드러내고 있기 일쑤였다.

얼음이 덮힌 겨울 한강은
오래간만에 보아서 그런지 더욱 넉넉하고 유장해보였다.
보름인가?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로 만월이 가로등처럼 떠 있었다.

청담대교에서 시작하여
서울숲까지 걸어가자
날이 환하게 밝아왔다.

"오늘은 내 남은 인생의 첫 날!"
딸아이가 가르쳐준 말이 흥겹게 떠올랐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딸아이가 밝은 얼굴로 깨어 있었다.

익숙하고
그리운 것들과의 만남으로
일년 넘어 살아온 샌디에고의 기억은
오래 전의 일인 양 비현실적으로 멀게 느껴졌다.

(20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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